15년 전 왕성했던 태국여행과 대조
카페에서 작업하고 망고사며 집 가
가족과 일상, 단순하지만 풍요로워
남은 나날 금처럼 귀하게 보내고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 곳은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 꾸이년의 한 해변이다. 우리 가족은 바닷가 근처 아파트를 빌려 지내고 있다. 한 곳에서 일도 하고 헤엄도 치면서 여름을 날 생각으로 떠나왔기 때문에 여정에는 별 욕심 없다.
보름이 넘어가니 단골가게가 생겨나고 생활에는 루틴이 잡힌다. 낯선 도시에 단골가게가 생기는 것은 식물로 치면 뿌리를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매일 보면서 인사를 하는 얼굴이 있으면 도시 전체에 가로등이 켜지는 것처럼 환해진다. '아는 사람'이 있는 도시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가장 자주 가는 단골집은 쌀국수 가게와 작업을 하러가는 카페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쌀국수에는 주인이 직접 만드는 새우볼이 들어가는데 식감이며 맛이 정점에 달했다고 할까,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여기에 얼음 넣은 콩물을 곁들이면 건강하고 든든한 아침식사가 된다. 물샐틈없이 바지런하게 일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내가 자전거에 부딪쳐 넘어졌을 때 구급상자를 가져와 치료까지 해주신 친절한 분이다.
야자수를 따라 십분쯤 걸어가면 아드밧 카페가 나온다. 나무로 된 복층 내부는 통창으로 보이는 푸른 잎 때문에 눈이 시원하다. 건축도 멋있지만 무엇보다 꾸이년 최고로 맛있고 진한 커피가 여기 있다. 이곳에서 베트남 카공족이 되어 단편 소설을 한 편 쓰고, 장편 소설의 교정도 보았다. 주구장창 오다보니 카페 스태프나 사장님과도 인사를 트게 되었다. 사장님은 애니메이션이 본업인데, 꾸이년의 가볼만한 좋은 곳을 알려주다가 자신의 커피농장에도 초대해 주셨다. 공무원이었다가 꾸이년에 정착한 '그리움 카페'의 한국 사장님도 이번에 만난 귀인이다. 용산구청 공무원으로 이 도시와 인연을 맺은 후 6년 동안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파도를 거쳐 온 일화는 소설 쓰는 나에게는 노다지처럼 들렸다.
삶은 단순하게 축소된다. 쌀국수와 반미, 커피와 작업, 오후의 낮잠과 해수욕, 가족과 내 귀에는 새 소리처럼 들리는 베트남어…. 이렇게 간단한 요소마저 몽돌처럼 다듬어져서 일종의 자동항법장치처럼 돌아간다.
문득 이와는 대조적이었던 태국 여행이 떠오른다. 십오년 전에는 발바닥에 길이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이곳저곳 떠돌며 많은 것들을 보고 만나고 뭐든 왕성하게 내부에 들여다 놓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절반의 나를 그대로 지닌 채, 카메라로 치면 조리개를 완전히 열지 않고 천천히 셔터를 누른다. 빛을 응고시키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할까. 아마도 작가로 살면서 내 안의 좋은 것들을 문장으로 출력하는 육체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감각에는 기민하게 반응하지만 한편으로 느려졌고 뭐든지 오래 걸린다.
작업을 마치면 단골 과일가게에 들러 망고와 드래곤프루트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열대과일을 먹으며 바닷물이 식기를 기다려 오후 해수욕을 하고, 모래에 걸터앉아 몸을 말리고 있으면 하노이나 호찌민에서 온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도 나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족이나 친구와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해변 전체가 도시의 거실이 되는 듯한 느낌은 예전에 쿠바에서 받은 인상과 비슷하다. 42㎞에 달하는 기나긴 만을 끼고 있는 꾸이년은 그래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풍요롭게 느껴진다. 비치발리볼을 하는 청년들, 그 중 한 명은 대회까지 나갔는데 남편이 대회 사진을 찍다가 며칠 후 사진 속 청년을 가게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해변의 검은 모래가 흰모래와 섞여 무늬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구가 내게 보내는 암호 같다. 여행의 모래시계는 이제 지난날들이 남은 날들보다 많아졌다. 모래알들이 전부 아래 칸으로 내려가기 전에 남아있는 나날을 금처럼 귀하게 보내야겠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