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했던 보편적 가치 회복해야
민주주의 없는 경제성장 결국 붕괴
한줌 이익에만 몰두 사회전체 파멸
시민 자유·평등·정의 유지 노력 필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기득권과 특권을 독점한 소수가 나라 전체의 자본과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아닌 재벌이 경제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정치화된 검찰 출신들이 법을 다만 절차적이며 형식적으로만 적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에게서 공동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많이 경제적 성과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자신이 누리는 그 혜택의 뿌리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무감각이 역설적으로 그들 자신이 누리는 풍요와 자유, 특권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한 사회의 이른바 주류 집단이 전제적인 극단주의를 용인하고, 이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 민주주의는 곤경에 빠진다.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서는 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집단, 자본을 독점함으로써 집단적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통제해야 한다. 법은 아무리 훌륭하게 설계되었다 해도 기술적인 차원에서 합법적인 형태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정치화된 이들 법 기술자들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법의 애매모호함, 잠재적인 허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등에 업고 법 문자의 허용치를 이용해서 법 정신과 목적 자체를 왜곡하고 뒤집는다. 이 책은 네 가지 형태로 이런 현상을 분석한다. 법의 허점 이용하기, 과도하거나 부당한 법 사용, 선택적 법 집행을 통한 정치가 그것이다. 독재정권이 장기간 지배하던 페루에서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적에게는 법을"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정치 법기술자들은 자신의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법률전쟁을 전개한다. 이 나라 정치검찰의 행태와 빼박이다.
극단적 정치법기술자의 통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렵고 힘들지만 외면했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정의와 공정, 공동체의 규범 따위의 말은 결코 도덕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언어와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안정된 삶도 불가능하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와 억압적 정치체제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경제적 풍요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진 걸로 알게 되었다. 남북전쟁 속에서 국가가 분열될 위험에 처했을 때 미국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가 '저절로 돌아가는 기계'라고 생각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민주주의 없는 경제성장은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경제 자체를 붕괴시킨다. 거대 기업들이 지금처럼 반사회적 재벌로, 또는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나 소비자를 배제하는 행태가 아니라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경제 기업으로 거듭나게 감시해야 한다. 법이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게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검찰 세력의 과도한 정치화를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독점 자본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이 가진 한 줌의 이익에만 몰두할 때 사회 전체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막연한 연고주의에 입각해 민주주의의 원칙을 외면할 때 위험은 극대화되고, 마침내 공화정은 해체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 공정과 정의를 지켜내려는 노력, 보편적 도덕 감각의 회복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