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광복절은 결국 두 개의 기념식으로 쪼개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경축식에서 '3·1운동, 상해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광복, 정부수립'을 건국과정으로 통합한 뒤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이라며 통일 독트린을 공표했다. 같은 시각 별도의 기념식에서 광복회의 김갑년 교수는 윤 대통령을 향해 "친일 편향의 국정기조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청중은 "타도 윤석열"을 외쳤다.
78년 동안 국민통합의 시공간이던 광복절의 기운이 단 한 해의 분열로 빛이 바랜 채 공허하게 흩어졌다. 광복회의 분노에 편승한 야당의 정권 규탄은 서슬이 퍼렇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사실상 정신적 내선 일체 단계에 접어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 정권"이라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을 "일제 밀정 같은 자들을 요직에 임명한 왕초 밀정"이라며 "조선총독부 10대 총독이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은 야당의 공세를 예상한 듯 경축사로 답했다.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전략"인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을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 규정했다. 정부 경축식을 파투낸 진영과 세력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는 '불특정 사이비'로 표출됐다.
보수와 진보 정권이 교차할 때마다 진영 간의 역사 인식과 해석이 반동적으로 충돌했다. 응축된 충돌 에너지가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솟구쳐 광복절을 두동강 냈다. 현실 정치가 역사를 규정하는 일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 처럼 가소로운 일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코미디다. 독립운동사를 통째로 김일성 신화로 둔갑시킨 북한이 그렇다.
반동은 반동을 부른다. 대통령 부부를 "살인자"라 한 전현희 의원의 발언에 김종혁 최고위원이 "그럼 그분은 연쇄살인자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고 받는 식이다. 국민의힘은 조선총독부 총독 운운한 조국 대표에게 "만주나 평양에 가라"고 했다. 반동의 무한 반복에 갇힌 역사는 실체를 잃는다. 국민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나라는 국격을 상실한다.
국민은 독립했는데 정치만 식민시대와 해방정국에 갇혔다. 80주년을 맞는 내년 광복절은 물론 3·1절도 제대로 치러질지 걱정이다. 이런 정치라면 대한민국은 국경일 마다 역사로 분단된다. 시대착오적인 정치에 국민이 어지럽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