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두 개의 소나기가 있다. 하나는 여름날 예고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세차게 내리는 자연현상으로서의 비가 있고, 다른 하나는 가슴 속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민소설 황순원의 '소나기'(1952)다. '소나기'는 어린 소년과 소녀의 맑고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단편소설로 여러 면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1866)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국민소설이 된 까닭은 막 이성에 눈을 뜬 풋내기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서정적 이야기이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 작품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시기 우리들의 문학적 경험의 원체험으로 작동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맑고 고운 순수서정으로 빛나는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막 이성에 눈을 뜬 청춘들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성적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맑고 순정한 감정에 있다는 점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교육부 당국의 훈도와 교육의 목적으로 국정교과서에 수록된 것이다. 그러나 '별'이나 '소나기'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여름날 느닷없이 쏟아지는 세찬 소나기처럼 인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짧고 강렬한 경험이자 사태임을 보여준다. 마음의 근육이 채 형성되기도 전인 질풍노도의 청춘 시기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 아픈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잔인한 축복이기에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번뇌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중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소나기'와 '별'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2)로 유명한 레오 카락스의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라든지 수원 출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이 그렇다. '클래식'은 명백히 '소나기'의 변주이자 오마주다.
서울과 수도권의 열대야가 19일 현재 28일째 이어지고 있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열대야 일수로만 보면 2013년 서귀포의 57일과 1994년 서울의 36일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런 폭염에는 잠시라도 더위를 식혀 줄 소나기가 그립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소나기는 점차 사라져가고 그 빈자리에 스콜이 들어섰다. 이래저래 한줄기 소나기조차 그리운 고난의 시절인데, 이번 주 소나기 예보 소식이 옛 친구처럼 반갑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