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세대' 대통령과 야당대표에게
'나 자신의 모습은 상대와 대화통해
드러남'을 명심하는 날 오기를 기도
기독교 본질 흐리는 일부 교회권력자
완고함 내려놓는 노력·성찰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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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내 나이가 벌써 60대 중반인데, 공자가 말한 논어의 '위정(爲政)'편 제4장에 나오는 '이순'(耳順, 귀가 순해짐)이 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경험과 지혜'가 쌓여 타인의 의견을 잘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나이만 먹었지 아직 이순이 아닌 듯해서다.

우리나라에 이 '이순'에 해당하는 인구가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포함해 약 1천50만명(인구의 20%) 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의 '경험과 지혜'가 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우리 주변이 더 시끄럽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들 '이순' 세대에게 물어보고 싶다.

20세기 이후 서양 현대 철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타자(他者)'에 대한 성찰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7~2003)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윤리가 시작된다고 주장하였고, 타자와 자아의 동일성을 강조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 역시 자아가 근본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즉 타자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자신 모습이 타자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자와 레비나스의 말을 가만히 새겨보면 동서양의 이치가 같은 것 같다. '이순'의 '경험과 지혜'는 타자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순' 정도 되면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주는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끝없이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극단적 현상은 권력이 있는 정치권이나 교회 주변 종교계에서 유독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십여 년 전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교회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 때이다. 인종 차별주의자인 백인이 흑인 교회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해 목사 포함 흑인 신자 9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전국적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사망한 흑인 목사의 장례식에 대통령 오바마도 참석했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흑인과 백인으로 대립하게 만들어 정치적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추모연설 막바지에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가 가득할 청중을 향해 놀랍게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놀라운 은총,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이 감미로운 음성)'라는 노래다. 이 곡을 작사한 존 뉴턴(John Newton)은 노예무역선의 선장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미국으로 이송하면서 많은 흑인을 바다 위에서 죽게 한 사람이다. 나중 자신의 행동을 회개하고 이 노래를 작사했다.

오바마가 감동을 준 이유는 이 순간 백인과 흑인의 분열보다는 서로를 위한 통합의 노래로, 그리고 이 비극 속에서도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로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 노래 하나로 미국 전역을 분노에서 통합으로 바꾸는 기적을 이뤘다.

이것이 바로 예수 정신일 것이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성경 구절은 자기 위선과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순' 세대는 자신의 위선적 모습을 숨기고 깨끗한 척하며, 스스로도 그 위선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남을 비난하려 든다. 사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은 기독교의 핵심 주제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고백하는 모든 기도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키리에 엘리손, Kyrie, eleison)이며, 이것이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이다.

오늘 '이순' 세대인 현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위해 기도한다. '나 자신의 모습은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남'을 명심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아울러 교권주의 교회 권력을 가지고 기독교의 본질을 흐리는 일부 '이순'이 넘은 종교 권력자에게도 그 완고함을 내려놓는 부단한 노력과 성찰이 있기를 기도한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