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 '비판세력 비난' 정쟁 발언만
보편적 역사인식 범주 벗어날때 저항뒤따라
11월 정권 반환점… 정무적 판단 부족하면
사법리스크 야당대표들에게 명분만 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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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돼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얘기가 나온 게 1년 전이다. 항일 독립운동의 영웅에게마저 공산주의라는 낙인으로 흉상을 퇴출시키려 한 이념 과잉이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후 주춤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라며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으로 등치시켰다. 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에서 나아가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공산전체주의'라는 이념을 씌우며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도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 일본의 과거사 관련 발언은 없었다. 야당 등 비판 세력을 비난하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정쟁적 발언이 대신했다. 케케묵은 이념적 색깔을 동원해서 야당 및 비판세력을 직격하는 발언은 통합을 저해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지향하면서 일본과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데 공을 들여왔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법원의 강제노동 판결 관련 '제3자 배상안'을 채택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오염수 방류 등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 군함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을 포함시키지 못하는 등 일본에 대해 수세적 태도로 일관해 온 점 등에서 정부의 대일 관계의 지향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에서 환영 반응이 나왔을까.

최근 역사관련 단체의 장에도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기용됐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의 역사 관련 단체의 장에 임명된 인물들이 그들이다. 광복절 경축식이 두 쪽으로 갈라진 직접적 원인 제공자는 독립기념관의 장으로 임명된 김형석 관장이다. 그는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인하는 듯한 인식으로 비칠 수 있는 "1948년 8·15 이전에 광복의 의미가 없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광복된 거다", "일제 강점기 때 국권을 잃었으므로 일본 국적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인물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물론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와 3·1 독립유공자 유족회 등이 포함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반대하고 나섰다. 역사기관 수장 중 한 사람은 일제의 지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을 '반일종족주의'라고 폄훼하며 보편적 역사의식과는 괴리가 있는 주장을 펴는 '반일종족주의'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방통위원장과 고용노동부 내정자 역시 논란을 일으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인사로 볼 때 윤 정부는 강성 극우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사란 정권의 메시지이고, 국정운영의 바로미터라는 점이다. 인사가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라 하더라도 객관적이며 보편적 역사인식의 범주를 벗어날 때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22대 총선에서의 국민의힘의 참패는 정권의 국정운영방식을 바꾸고 당정관계를 재정립하라는 국민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해석해야 한다. 국민 일반이 요구하고 있는 변화와 쇄신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인사에서 역사인식의 부재와 민의에 대한 감수성의 실종을 노정한다면 대통령의 지지율 정체를 벗어나기 어렵다.

오는 11월이 정권의 반환점이다. 집권세력은 대통령 지지도가 민주화 이후 가장 저조한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웃도는 걸 위안으로 삼고 총선 참패에도 변화의 어젠다를 발신하지 못하면서, 인사에서조차 국민의 눈높이와 괴리가 있는 인물을 등용하는 행태가 일상화된다면 여권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감수성과 정무적 판단의 부족이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야당 대표들에게 명분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여권에게 더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