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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Nouvelle Vague·새로운 물결)는 1960년대 전후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 사조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감독 등이 이끈 누벨바그는 혁신과 동의어였다. 스튜디오 조명보다 자연광, 즉흥적인 연출의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비선형적인 스토리 전개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자유와 반항으로 각인됐다. 누벨바그 황금기의 중심에는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존재했다. 들롱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MZ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얼굴천재'다.

영화 속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사인·유서 위조에 목소리까지 흉내낸다. 우수에 찬 푸른 눈동자는 들롱의 실제 불우했던 시절과 교차되며 위험하고 불안한 캐릭터임에도 관객들을 동화시켰다. 동경과 경멸을 오가는 내면 연기에 리플리가 알랭 들롱이었고, 알랭 들롱이 리플리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요트 하면 연상되는 명장면, 키를 잡고 지중해 파도를 가르는 모습에 많은 청춘들이 빙의했다.

알랭 들롱은 1957년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해 2019년 마지막 작품 '우리 모두 사랑한 여인'까지 60여 년간 9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베를린 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에 이어 2019년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알랭 들롱은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현실에서도 때때로 악역을 자처했다. 끊임없는 스캔들 메이커로, 경호원 살인사건 용의자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 노선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와 동성 결혼 허용을 반대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고통받으며 안락사를 희망하는 등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하지만 넌 결코 알랭 들롱이 될 수 없지(But you'll never be Alain Delon)." 마돈나는 노래 'Beautiful Killer'(2012)의 마지막 가사에 그의 이름을 담아 존경을 표했다. 스타 그 이상의 기념비적 존재라 칭송받은 '세기의 미남'이 향년 88세로 눈을 감았다. 알랭 들롱이라는 불멸의 장르를 남기고, 태양이 가득한 곳으로 떠났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