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생활' 엿볼수 있는 책 2권
유력가문 과외 혈안·입시비리 횡행
나라 기틀 흔들어… 오늘날과 비슷
가족에게 쓴 '조병덕 편지' 1700통 남아
사고치는 아들 등 인간적인 개인사 민낯
■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328쪽. 1만8천원
수능부터 고시까지 전 국가적 관심사인 시험은 500년 전 조선에도 있었다. 모든 출세의 왕도인 과거는 인성과 학식, 국가 경영의 자질 등을 두루 깐깐하게 평가하며 조선의 버팀목이 됐다. 높은 수준을 요구한 대신 급제자에게 부와 명예, 권력이 보장됐으니 시험은 전쟁과도 같았다.
저자는 실록의 기록부터 이황의 편지나 정약용의 문집 같은 개인의 기록까지 과거와 관련된 여러 사료를 찾았다.
책에는 우리 시대에 앞서 시험지옥을 겪었던 선배들의 웃지 못할 일화가 녹아 있다. 1천권 이상의 유교 경전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필체까지 갈고 닦았고, 수많은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유력 가문들은 이름난 학자를 과외 선생으로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었다. 시험장에서는 온갖 부정행위가 시도됐다. 특히 권력형 입시 비리가 횡행하며 조선의 기틀을 흔들기도 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권세를 누리기 위한 자격과도 같았다. 욕망과 좌절로 가득한 치열한 입시 전쟁은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전전한다. 하지만 그때도 이러한 입시가 가져온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사리사욕과 각자도생의 현실 앞에 흩어지고 무너져버린 조선의 모습을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비교해볼 만한 일이다.
■ 양반의 초상┃하영휘 지음. 궁리 펴냄. 344쪽. 2만5천원
신간 '양반의 초상'은 조선 후기 유학자 조병덕이 가족에 남긴 편지 모음으로 '양반의 사생활'의 개정판이다. 시문집 '숙재집'으로 알려져 있는 조병덕은 권세를 누리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대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몰락한 처지였다.
그의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개인의 서간문으로는 최대 분량으로 1천700여통에 달한다. 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둘째 아들 조장희에게 보내는 것이 많았는데 양으로 계산하면 6일에 한 번꼴이다.
편지에는 고매하고 점잖은 양반의 모습 대신 민초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인간이 담겨 있다. 막막한 생계와 빚 걱정, 속 썩이는 아들에 대한 꾸지람, 만성 신경성 설사로 고생하는 처지, 위계질서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한탄 등.
개인사와 시대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낸 조병덕은 종종 편지 끝에 이를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 그리고 남겨진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양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고문서로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인문학자 하영휘는 한국 근현대서적과 고문서를 소장한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처음 이 편지들을 만났다. 박스 안에 잠들어 있던 편지의 주인이 조병덕이었으며, 그 편지가 가족 간에 주고받았던 것임을 알게 된 저자는 여느 문집과는 다른 '가서(家書)'의 개념을 발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책은 편지 전문을 본문에 나눠 싣고 중요한 편지는 원본 사진과 석문(탈초), 번역 순으로 실었다. 특히 간찰 사진의 크기를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키워 서체 연구에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