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치기 들통 무리한 생산 사고
정부기관 침묵 책임지는곳 없어
유가족 답답·피해자들 인권 멈춰
많은 시민 그들의 기댈곳 돼주길

얼마 전 발표된 경찰의 수사 결과는 참담했다. 아리셀은 군에 납품할 리튬전지의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품질을 조작하고 그것이 탄로나 전지를 다시 생산하게 되었다. 회사는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과도하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를 급하게 공정에 투입하고 충분한 업무 관련 교육,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기 2일 전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생산라인은 계속 가동되었다. 품질조작, 노동자 존중 없는 무리한 운영은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1:29:300'. 하인리히 법칙은 1건의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전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일어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화재 참사가 발생하기 전 현장에서 작은 화재는 흔한 일이었다. 연기가 피어올라도 일을 계속하는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화재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리셀은 안전대책 없이 무리하게 생산을 강행했다. 이 외에도 참사를 예견한 징후들은 더 많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징후를 알고 있었음에도 덮어놓은 노동부, 국방부 등 관계기관의 침묵이 있었다. 잦은 화재가 일어났지만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해 산재보험료를 감면해준 고용노동부, 군에 납품한 배터리가 폭발 사고가 있었음에도 공급망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국방부 등. 모든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결국 23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되었다.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지만 책임지는 곳이 없다. 그래서 유가족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더 깊어지고 있다. 억울함을 이야기하고자 달려간 노동부, 국방부, 경찰청 등 정부 기관들은 유가족들의 외침에 응답이 없다. 집회 신고 안 했다고 불법이라 경고 방송을 하거나 방패를 든 경찰을 앞세우기 일쑤다. 재난·참사의 피해가 발생했다면 문제해결과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할 곳이 정부 기관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만난 정부 기관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문턱이 너무 높았다. 그 문 앞에 진실 규명, 재발방지대책, 피해자들의 인권이 멈춰져 있다.
유가족들은 외면하는, 침묵하는 정부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먼저 떠난 가족의 억울함을 풀기 위하여, 또다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위해. 어쩌면 우리 사회 안전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쓰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재난·참사를 쉽게 과거형으로 말하고 망각하는 사이에도 피해자들은 세상을 변화 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세상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쉽게 잊고, 아직도? 라는 말로 사건을 지워버린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없다. 기억하고 또 곱씹고,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대안을 마련해야 재난·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발걸음은 안전사회를 향한 나침반이다. 그러니 부디 많은 시민들이 아리셀 참사 피해자 곁에 서주시기를. 그들의 기댈 곳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