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운동장·열악한 장비에도 '열정'
더그아웃 제창후 그라운드 뜨겁게 질주
8월 우리나라에 무더위가 지속된 만큼 일본 열도는 더 뜨거웠다. 일본 최고의 고교 야구대회에서 조그마한 학교가 잇따라 기적을 세우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어릴적 야구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어린 선수들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야구공이 없어 밤 늦은 시간까지 실밥을 꿰매어 다시 야구공을 사용했고, 다 떨어진 글러브와 구멍난 유니폼을 입으면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훌쩍 지난 지난 23일 재일동포가 세운 한국계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甲子園))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꺾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교토국제고는 운동장이 좁아 선수들이 훈련하기도 쉽지 않고, 야구공이 없어 공의 실밥을 꿰매어 사용하는 등 훈련 환경이 열악했다. 이런 교토국제고가 기적을 일궈냈다는 것에 온 국민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1924년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를 개최하고자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이 개장하면서 경기장 이름을 딴 고시엔은 일본 고교야구대회를 상징하는 단어가 될 정도로 많은 스타급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현재 고시엔 구장은 고교야구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는 일본프로야구 간사이 지역의 대표 구단인 한신 타이거스가 홈으로 사용한다. 고시엔은 크게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하는 봄의 고시엔, 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는 여름 고시엔으로 나뉜다.
1915년 일본 전국중학교우승야구대회(이후 고교 대회로 명칭 변경)를 모태로 한 여름 고시엔이 원조다. 이런 큰 대회에서 교토국제고가 올해로 106회째를 맞이한 여름 고시엔에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1999년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는 처음으로 여름 고시엔에 출전한 2021년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지만 2022년에는 1차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는 고시엔 본선행 티켓도 얻지 못했다. 교토 지역 예선은 73개팀이 출전해 1팀만 고시엔에 나갈 수 있어서다. → 그래픽 참조
여름 고시엔에는 광역 지방자치단체인 47개 도도부현 대표 47개교에 지역이 큰 홋카이도, 도쿄도에서 온 1개교씩을 더해 49개교가 출전한다. 4천 개가 넘는 일본 고교 야구부가 실력을 겨뤄 지역 대표로 고시엔을 밟기에 여름 고시엔은 꿈의 무대로 불릴 수밖에 없다.
1924년부터 열리는 봄 고시엔의 공식 명칭은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로 토너먼트를 거쳐 지역 대표를 뽑는 여름 고시엔과 달리 전형위원회의 결정으로 출전학교가 결정돼 선발을 뜻하는 일본어 '센바츠'로 불린다. 출전팀의 대표성, 대회 개최 시기 등 여러 면에서 고시엔의 간판은 8월의 태양 아래 펼쳐지는 여름 고시엔이 최고다.
특히 까까머리 고교생들이 지역의 명예와 우승을 위해 열정적으로 몸을 던지는 투혼, 빛나는 청춘,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어 일본에선 프로야구보다도 인기가 높다. 80년대 국내 라디오에서 중계했던 고교야구대회처럼 말이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고시엔 구장에는 또다시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더그아웃에서 교가 제창을 마친 교토국제고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달려가 우승 감흥을 다시 즐겼고, 외야 부근 3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응원단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