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학 거부되고 맹목적 믿음
홉스, 인간 본성 이기적이라고 봐
믿음과 신념만으로는 양보·타협
다가갈 '선한 한국인' 될 수 없어
지역사회의 작은 사안에서 보이는 심성과 관행은 국가적 의사결정에도 나타난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는 정부나 과학자 그리고 IAEA 사무총장의 설명보다는 야당대표의 '핵폐수' 선동에 일시적으로 더 설득되었다. 그 결과 방사능 조사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은 오히려 증가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경도되었다. 그 결과는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산과 바다의 황폐화, 원전산업의 쇠망 등을 낳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결정하고 국민은 동원된다.
이른바 환경정치에는 그 문제의 제기와 해결의 근간이 되어야 할 과학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번 원전처리수 논란에 그나마 과거에 비해 과학적 관점과 토론이 중시되었지만, 향후에도 논란은 다시 출현할 수 있다. 천안함 피격사건, 세월호 침몰사고, 이태원 압사사고 등 우리의 국가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비과학적 추론과 종교적 맹신으로 인해 늘 더 큰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곤 했다. 그 모든 사건들에 사실과 과학은 오히려 거부되고 맹목적인 믿음과 극단적인 신념만이 자리잡으면서 우리의 국가공동체를 붕괴시키곤 하였다.
모든 국가적 의사결정은 어느 일방향으로 결정되기가 어렵다.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그 무언가는 오히려 절제되어야 한다. 한때는 빈곤한 국가가 과대한 부양인구로 고통받았지만, 그 인구가 국가성장의 토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과학적인 공동체였다면, 다자녀 출산을 경멸하고 죄악시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산아제한정책을 밀고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성평등주의로 인식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그 수준과 강도의 심화에 제동을 걸었다면,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가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많은 남성들이 과도한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사회균열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과정이나 정신적 내재화 과정 모두에서 사회계약론의 경험이 얇다. 외삽된 사회체제이념과 법질서를 수용했을뿐이다. 그 사회계약론의 이론적 뿌리를 세운 사회이론가인 로크와 홉스는 상반된 인간관 위에 서 있다. 로크는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도 자유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선의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대단히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로크는 개인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구성원들간의 합의를 이루고 사회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국가가 국민의 이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한다면 이른바 혁명도 가능하며, 그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분할하는 삼권분립을 주장하였다. 이와 달리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제어하기 위한 계약의 방식으로써 절대군주론을 주장하고 군주에게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통치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홉스가 말한 의사(pseudo) 절대군주국가를 거부한 우리 국민들은 결코 '이기적인 한국인'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계엄령을 우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현 정부를 부정하고 일괴암적인 다른 국가를 신념으로 조장한다면, 우리 국민은 결코 '선한 한국인'이 아니다. 현실의 우리 국민은 스스로의 주장과 이익을 취하면서도 타인과 합의할 수 있는 의미에서 '선하면서도 이기적인' 한국인이다. 실현가능한 해결책은 그 중간 어디에 있으며 이를 만들 수 있는 국민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타협가능한 의미에서 교양있고 '선한' 국민이어야 할 것이다. 믿음과 신념만으로는 서로의 차이(이익)를 인정하고 양보와 타협에 다가갈 수 있는 '선한 한국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