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애·정지용·백석·윤동주…
고전 텍스트 '낯익은 새로움' 선사
떠나고 나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고
가고 싶고, 언젠가는 가야만 하고
가을이 오면 더욱 그리워하게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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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혹서의 계절, 고향(故鄕) 시편을 읽어보았다. 기억의 원형이나 보편적 공감을 담은 작품이 어쩌면 기본을 잃어버린 시대에 어떤 근원적 힘을 건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텍스트들은, 참신성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낯익은 새로움'의 순간을 선사해주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최순애의 '오빠 생각'(1925)과 이원수의 '고향의 봄'(1926)이다. 현실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분의 너무도 유명한 동요였다. 앞의 것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마며 서울로 향하는 이향(離鄕)의 모습을 포착했다면, 뒤의 것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회향(懷鄕)의 정서를 담았다. 근대인은 타향살이라고 했거니와 그들에게 고향이란 돌아가야 하지만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정지용의 '향수'(1927)와 '고향'(1932)은 지용 버전 고향 시리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는 구절은 망향(望鄕)과 실향(失鄕)의 정서를 반대편에서 보여준다. 마음에서는 불변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변해가는 고향을 비대칭 데칼코마니처럼 그렸다. 5년 터울의 작품에서 정지용은 한쪽에서는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여전히 울고 있을 것 같고 한쪽에서는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가 사라져버린 고향의 양면성을 노래하였다. 김희갑과 채동선 곡으로 불러보아도 좋을 한국 현대시의 명편들이다.

백석의 '고향'(1938)은 함흥 시절 경험을 다루었다. 혼자 앓아눕게 되어 의원을 찾았는데 의원은 아픈 데 대신 고향을 묻는다. 사람이 앓아누우면 그리운 것도 많은데 그때 고향이 비로소 살아나온다는 것을 이 작품은 암시해준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간 후 '먼녯적 어늬나라 신선'같았던 의원은 어느새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모두 거기 있었다는 환각의 울림을 준다. 고향이란 특정 공간이 아니라 출향(出鄕)한 사람이 타향(他鄕)에서 발견하는 결속감에 있을지도 모른다.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1941)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북간도로 낙향(落鄕)한 청년이 그날 밤 상상적 탈향(脫鄕)을 감행하여 '또 다른 고향'으로의 궁극적 귀향(歸鄕)을 염원하는 작품이다. '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쫓기우듯 가야 하는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산 경험을 축적해온 우리 민족 공동체가 느꼈을 법한 비원이기도 했을 것이다. 태어나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하지 않고 '멀리 북간도'('별 헤는 밤')라고 짐짓 표현했던 그는 마음 깊은 곳에 늘 '또 다른 고향'이 존재한다는 디아스포라의 감각을 우리의 마음에 남겼다.

서정춘의 '30년 전-1959년 겨울'(1996)도 의미 깊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그곳이 고향이란다'라는 짧은 작품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떠나 배불리 먹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는 아버지 말씀의 심층에는 아무리 배불리 사는 곳일지라도 그곳은 고향일 수 없다는 역설의 언어가 암시적으로 담겨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용악의 '북쪽'(1937)을 읽는다.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여기서의 고향은 시름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인이 팔려가고 그리움의 마음마저 눈감기 어려운 고난의 공동체로 새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생지이고, 유소년기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선대(先代)의 기억이 축적된 지역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향은 떠나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고, 돌아오면 안타깝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여러 사향(思鄕)의 언어를 통해, 고향이란 언제든 가고 싶고, 언젠가는 가야만 하고, 언제인가 그리워지고, 언제나 눈감을 줄 모르는 시공간 모두를 말하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 오면 그때 그곳을 더욱 그리워할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