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악화 인지 시점이후만 유죄
형사재판서 또 무죄땐 민사 불리
대법서 다른 판단 나오길 기대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29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역 7년으로 감형된 속칭 '건축왕' 남헌기의 2심 선고에 대해 검찰의 상고를 촉구하고 있다. 2024.8.2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건축왕' 남헌기(63)씨가 항소심에서 대폭 감형되고, 그와 함께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던 피고인들은 무죄나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번 항소심 판결이 남씨 일당의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씨 등은 2021년 3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563명에게서 전세보증금 453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기소됐다. 또 검찰이 올해 6월 남씨를 비롯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피해자는 665명, 피해액은 약 536억원으로 늘었다.

이 중 가장 먼저 기소된 남씨의 148억원대 전세사기 사건은 올해 2월 1심 선고를 거쳐 지난 27일 항소심 선고가 나왔다. 1심은 남씨에게 사기죄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징역 4~1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남씨에게 징역 7년, 다른 피고인들에겐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남씨 일당이 보증금 반환을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시점 이후 보증금을 받은 사례만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남씨와 일당이 각각 2022년 1월과 5월이 돼서야 재정 악화 상황을 알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전에 체결한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는 사기의 고의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해당 시점 이후 같은 금액의 보증금으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한 경우는 보증금 수수 행위가 없었다고도 판시했다. 이에 따라 사기 혐의 액수가 148억원에서 68억원으로 크게 줄면서 피고인들도 감형됐다. 검찰은 29일 이 사건에 대한 상고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추가 기소된 남씨 일당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원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범행 시점이나 액수를 두고 같은 판단을 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2차 기소 사건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공판 기일이 이어지며, 3차 기소 사건은 아직 첫 재판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김태근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변호사는 "남씨 등은 이미 2018년부터 재산세 등을 미납해 재산 압류를 당하거나 세입자와 보증금 반환 청구 분쟁을 겪는 등 오래전부터 재정 상황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일당의) 재정 악화 인지 시점을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하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은 상고심에서 판단을 다시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남은 형사 재판에서도 이번 재판처럼 일부 피고인(공인중개사)에게 무죄가 나온다면 이들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전세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은 피해 보상을 위한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오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는 남씨 사건의 피해 규모가 수사 당국이 그동안 확인한 것보다 많은 2천753가구, 보증금 금액으로는 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까지도 관련 고소장이 접수되고 있으며, 수사 당국은 혐의 입증을 위한 추가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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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