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대책위 활동도 절망 하소연
"내가 죽어야 다시 국가가 나서나"
"사기꾼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부는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며 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안상미(46)씨가 울먹이며 이렇게 외쳤다.
29일 오전 11시께 인천지방검찰청 앞에 안씨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남헌기(63)씨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남씨는 1심에서 사기죄 법정 최고형인 15년을 선고받았다가 이틀 전인 27일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됐다. 그와 함께 4~13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공범 9명도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8월28일자 6면 보도='미추홀구 건축왕' 항소심서 형량 15년→7년 '반토막')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전세보증금을 전부 잃었다는 조시연씨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가해자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법원 판결로 인해 피해자들은 더 큰 어둠 속에 갇혀 버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전세사기로 인해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던 세입자들의 유가족에게 법원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조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30대 청년이 남씨 일당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이 청년을 포함해 같은 해 상반기까지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잇따라 숨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이들을 상징하는 영정사진을 들었다.
남씨 일당이 항소심에서 무더기로 감형을 받은 다음 날인 28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피해자들이 10년간 무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거나, 경매차익(LH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이)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내용이 뼈대다.
특별법 제·개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서 앞장서 활동한 이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김병렬씨는 "항소심 재판이 끝난 이후 '내가 죽어야 다시 국가가 나서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며 "애써 버티듯 살고 있었는데 모두 다시 절망에 빠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은선씨는 "남씨 일당이 감형을 받고 나온 이 시점에도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전셋집 경매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에 이미 전셋집이 경매에서 낙찰된 피해자는 소급 적용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