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일상에 스며든 도박
'불법' 인식없이 발 들인 후 쉽게 중독
"아프다" 결석… 부모 속여 비용 마련
남고생 "학급 25명 중 6~7명은 한다"
'빚의 유혹 취약'… 돈 빌려주는 학생도
도박 중독은 성인들만 겪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니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전염병처럼 확산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큰 문제의식 없이 도박에 발을 들이고 쉽게 중독된다. 도박 치료를 위해 학업중단 숙려 기간을 갖고 있는 김주회(가명)군도 불법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대는 고등학생이다.
김군은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 상담 등을 받으며 이달 말까지 학교에 나가지 않고 도박 치료를 받는다. 김군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22년에 불법 도박에 손을 댔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바카라라는 게임이 유행했는데, 그때 처음 도박에 손을 댔다"며 후회했다. 처음엔 바카라가 도박이고 이 게임을 하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한 번에 1만~2만원을 충전해 이용했는데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독 증상이 나타났다. 하루에 한 시간 안팎이던 사이트 접속 시간이 점차 늘었다. 생활에서 도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학교생활은 뒷전으로 밀렸다. 밤샘 도박이 이어졌다. '몸이 안 좋다'는 거짓말로 결석 일수가 늘었다. 부모님에게도 거짓말하면서 도박 비용을 마련했다.
김군은 친구로부터 추천받은 사이트에서 도박을 시작했다. 김군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이 또래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도박을 시작한다. 김군은 "도박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군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도박이 교실마다 만연해 있다는 게 아이들과 전문 상담가에게 전해 들은 현실이다.
도박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윤인채(가명·고3)군은 "한 반이 25명이라고 하면 적어도 6~7명 정도는 도박을 한다"며 "제가 확인한 것이 이 정도이고 더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김영선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심한 곳은 한 반의 70% 정도가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박은 빚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청소년은 '빚의 유혹'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는 도박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학생들까지 생겨났다. 학교에서 도박, 도박 자금 대출 등이 모두 이뤄지는 것이다.
윤군은 "돈을 따서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처음엔 친구들에게 빌리다가, 부모님과 친척에게까지 돈을 빌려 도박을 했다"며 "결국 아예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됐다"고 했다. 윤군의 도박 빚은 수천만원에 이른다. 아직 빚을 모두 갚지 못했다.
윤군은 스스로 도박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자신도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아직 도박사이트를 클릭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도박은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급발진하는 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급발진하는 차는 어디를 크게 들이박거나 무언가 앞에서 막아줘야 해요. 도박도 누군가 멈춰줘야 하는데, 저는 부모님이 정말 처절하게 앞을 막아주셨어요. 부모님께는 지옥에서 꺼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윤군의 이야기다.
명지대학교 권일남 교수(청소년지도학과)는 "청소년들은 도박을 통해 돈을 늘려가는 성취감만 기억한다"며 "돈을 잃을 수 있고 손실이 클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도박에 빠져드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도박 검거, 14~19세 5년간 3배 늘어… 촉법소년 올해만 43명 [온라인 도박에 빠진 청소년·(上)])
/정운·김희연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