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사기'에 나와 남을 가르고 타자를 배척하며 반목하는 이야기가 있다.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길르앗 사람과 에브라임 사람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강 여울목에 길르앗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쉬볼레트(Schibbolet)'란 말을 발음해 보라고 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볼레트'를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워 '쉬볼레트'를 '시볼레트(Sibbolet)'라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이 발음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 강어귀에서 무참하게 살육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에브라임 사람만 4만2천명이었다.
때는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도쿄도를 포함한 미나미칸토 지역에 지진이 발생했다. 이른바 관동대지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불만과 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다닌다는 낭설을 유포했고 일본 자경단원들은 '쥬고엔, 고짓센(15엔 50전)', '디이콘'(무) 등을 발음해 보라고 시켰고, 발음이 이상하다 싶으면 조선인으로 간주하고 살육했다. 이때 6천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 사람들이 살해됐다.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정부는 '충용 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우고 있으며, 적을 격퇴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방송했다. 이를 믿은 국민들은 그대로 서울에 남아 인민군의 치하에 남게 됐다. 비도강파(非渡江派), 잔류파(殘溜派)가 된 것이다. 서울 수복 후 한강을 건너 도망친 사람들은 도강파(渡江派)로 행세하며 정부의 발표를 믿고 남은 이들에게 부역 혐의를 씌워 문초하고 잔혹하게 처벌을 가했다. 적반하장의 타자 배제와 갈라치기였다.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도 갈라치기와 타자 배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감정은 많이 해소됐다고 하지만, 보수와 진보로 나뉜 채 진영의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채상병 특검에 금융투자소득세 등 지난 1일 오후 여야 대표가 만났어도 민생현안들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정례적인 회담을 갖자고 했을 뿐 구체적 합의에 이른 게 없이 빈손으로 헤어졌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타자 배제와 반목의 신판 '쉬볼레트'로 대한민국이 멍들고 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