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박이 불러오는 문제들
절망의 터널, 사회까지 병 든다
친구에 빌린 20만원, 500만원 돼
독촉문자에 전학·정신병원 치료
위험&문제군·학교밖 상황 심각
성인 범죄보다 잔인한 경향까지
고등학교 3학년 김민성(가명)군은 올해 초 같은 반 친구인 정현우(가명)군에게 20만원을 빌렸다. 당시 김군이 온라인 도박에 빠져 사이트에 자주 접속했는데, 도박 자금이 필요한 것을 눈치챈 정군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단,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빌린 돈의 50%씩 이자가 붙는 조건이었다. 온라인 도박에서 돈을 따기만 하면 금방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군은 돈을 빌렸다.
도박은 김군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500만원을 넘어섰다. 김군은 수업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해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했지만, 일당 4만~5만원으론 역부족이었다. 김군이 돈을 갚지 못하자, 정군은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일삼고 수시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위협했다.
정군은 김군의 아버지에게도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김군 아버지가 교사로 재직 중인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정군을 피해 한 차례 전학도 했던 김군은 현재 학교를 그만둔 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그는 최근까지 자해 시도를 8차례나 했다. 김군의 아버지가 전해 들은 얘기로는 정군에게 도박 자금을 빌리거나, 정군 명의로 충전된 사이버머니로 도박을 시작했다가 이를 메우지 못해 아들처럼 당한 학생이 같은 학교에 5명 있다고 한다.
이는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에 상담 요청이 들어온 경상남도 한 고등학교 학교폭력 피해 신고 내용이다. 도박 때문에 진 빚이 동급생 간 협박과 폭행,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이어진 극단적 사례다.
청소년 도박은 비단 개인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학교폭력을 비롯해 절도, 사기, 사회적 고립, 불법 대출, 자살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2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결과, 돈내기 게임(도박)을 해 본 학생 6천968명 중 9.1%(635명)가 '남의 돈이나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훔치거나 뺏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고등학생 4천392명 중 '자살을 생각해 봤다'는 학생의 비율은 8.8%(613명)였다.
도박 중독에 해당하는 '위험·문제군' 학생이나 학교 밖 청소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위험군은 경미하거나 중증 수준으로 도박 행위 조절에 실패한 청소년, 문제군은 심각한 수준의 조절 실패를 겪는 청소년들을 말한다.
이 조사에서 위험·문제군 학생 831명 중 절도나 갈취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10.7%(89명), 자살을 고민했다고 답한 비율은 14.4%(120명)로 더 높아졌다. 또 학교 밖 청소년 203명 중 25.6%(52명)가 도박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훔친 경험이 있고, 자살을 생각해 본 청소년 비율은 26.1%(53명)에 이르렀다.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은 "어떤 학생들은 돈을 빌려주거나 자신의 사이버머니로 게임을 하도록 해 친구들을 도박의 길로 유도한다"며 "돈을 갚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도박 사이트 추천인 아이디에 자신을 쓰도록 홍보하는 일을 시켜서 사이트로부터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일부 아이는 돈을 갚으라며 괴롭히고, 집으로 찾아가고, 또 다른 범죄를 하도록 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며 "최근에는 성인 범죄보다 더 집요하고 잔인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 그래프 참조
→ 관련기사 ('또래 문화' 전파 빨라… 청소년 도박 발 들이면 상황 더 나빠지기만)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