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부터 EU 공급망 실사법 적용
거래하는 모든 기업 직접 평가 예정
7800개社·8만명 근무하는 남동산단
남동구, ESG 경영컨설팅 지원 나서
예산 확보 실패로 공정개선은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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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효 인천 남동구청장
'탄소중립과 친환경'을 내세운 파리올림픽이 지난달 12일 폐막했다. 하계 올림픽의 막은 내렸지만 '환경' 올림픽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파리올림픽이 친환경을 표방하고 실천한 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유럽연합(EU)의 환경정책 추진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기회였다. EU는 온난화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초국적 정책을 추진하며 관련 법규를 제정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2027년부터 적용될 EU의 공급망 실사법이다. 공급망 실사법은 EU가 거래하는 모든 기업과 그 기업의 밸류체인 상의 모든 기업에 대해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 즉, 'ESG' 측면의 기준에 합당하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직접' 평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글로벌 순 매출의 최대 5%를 벌금으로 낼 수 있어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과 그 협력사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한 남동구는 어느 곳보다 ESG 경영 전파가 급선무인 상황이다. 남동산단에는 현재 7천800여 개의 기업, 8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1980년대 조성된 남동산단은 입주기업 시설 노후화로 환경문제, 기반 시설 부족 등 열악한 상황이다. 특히 입주기업 대부분이 기계, 전기·전자 등 고탄소 배출 상위 기업이며 주조·용접 등 뿌리산업이 80% 이상 차지해 탄소 저감이 시급하다. 하지만 남동산단 중소기업 대부분이 비용, 시간 등 이유로 ESG 경영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동구는 문제 해결을 위해 2023년 인천 최초로 'ESG 경영 컨설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컨설팅만 수행하는 타 지자체의 사업과는 달리 중소기업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정개선까지 지원하는 '남동형 ESG경영 컨설팅 모델'로 10개 사에 컨설팅을 수행하고, 5개 사에는 공정개선을 지원해 사업대상 기업을 '남동형 ESG 선도 기업'으로 육성했다. 첫 시도였지만 반응은 예상보다 더 긍정적이었다. 공정개선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불량률 감소, 작업자 안전 확보, 생산 속도 증대 등 실질적인 개선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속적인 사업 추진을 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심지어 지난해 매니페스토 경진대회에선 일자리 분야 우수상까지 받았다.

긍정적 반응에 힘입어 올해는 더욱 확장되고 고도화된 모습으로 진행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지만, 예산 확보에 실패하며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공정개선 비용 지원이 사업의 방향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고, 많은 기업에게 컨설팅 혜택이 주어지지 못한다는 질책도 있었다. ESG 경영의 물꼬를 트는 사업이었기에 당연한 부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설득과 요청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무엇보다 기업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여러 차례 기업을 방문하고 컨설팅 과정을 점검하며 기업인들을 만났다. 우리의 비전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아낌없는 응원도 보내줬다.

컨설팅을 통한 ESG 경영 확산은 물론 중요하지만, 제조업의 핵심인 설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ESG 경영 성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에너지 절감, 폐기물 처리, 근로자 안전 등은 공정개선이 없다면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결국 원청회사의 ESG 기준을 맞추지 못하거나 신규 계약의 기회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공정개선을 통해 발생한 재무적 성과를 ESG 경영의 비재무적 영역에 투자해 전반적인 ESG 경영 수준을 높일 수도 있다. 이는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본격적인 ESG 경영 체계를 갖출 원동력이 된다.

ESG 경영은 변화의 바람이며 위기이자 기회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고 위기가 찾아오지만, 미리 준비하면 이전에는 얻기 힘들었던 기회의 창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준비는 기업의 몫이고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지역 중소기업 육성의 책무를 진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남동구 중소기업의 ESG 경영 정착은 언제까지 후순위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박종효 인천 남동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