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아테네학당'
'서원아집도' '연강임술첩'도 같은 맥락 그림
격의 없이 토론하는 新한류문화 만들어가길
상상만 해도 근사할 것 같다. 규모는 작아도 당대 최고의 인물과 최고의 명저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는 환상적인 상황을 가정한 노래(경기체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한림별곡'이다. '한림별곡'의 실제 상황이 18세기 영국에서 있었는데, 이를 연구한 것이 레오 담로슈(Leo Damrosch)의 '더 클럽'이다. '더 클럽'은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모임과 교류 그리고 상호영향을 연구한 저작물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전기 작가 제임스 보즈웰·보수주의 정치이론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버크 등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교류와 이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톺아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역대급 인물들이 모여 있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철학자와 예술가와 각 분야의 학자들이 그룹을 이루는 '클럽 문화'는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20세기 세계 인문학을 주도했던 프랑스 인문학도 이런 클럽 문화와 세미나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러시아 출신 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1902~1968)가 개설한 '헤겔 세미나'는 프랑스 인문학의 산실이었다. 언어와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인간의 욕망과 의식과 주체를 탐구한 자크 라캉이 바로 '코제브 헤겔 세미나'의 멤버이자 수혜자다. 코제브의 헤겔 세미나는 '라캉 세미나'로 이어지는데, 라캉의 후계자이자 사위인 자크 알랭 밀레가 개설한 '라캉 세미나'가 그러하다. 마르크스와 라캉 이론에 바탕을 두고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펴는 비판이론가 슬라보예 지젝(1949~)이 '라캉 세미나'의 멤버이자 자크 알랭 밀레의 수제자다.
서양에 '학당'과 '클럽'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시사(詩社)와 '임술년(壬戌年) 모임'이 있다. 북송 때 화가 이공린이 그린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가 대표적 사례인바, 1087년 영종 황제의 부마였던 왕선의 정원에 모여든 당대의 인물들, 소동파·미불·이공린 등 예술가 16명이 모인 것을 기념하여 그린 그림이다. '서원아집도'의 전통은 '임술년 모임'으로 다시 꽃을 피운다. '임술년 모임'은 임술지추(壬戌之秋)로 시작하는 소동파 '적벽부'가 계기가 돼서 생겨난 전통으로 동아시아에서는 60년마다 임술년이 오면 이 같은 시회와 예술가들의 모임을 여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라든지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 또한 이런 맥락에 놓여있는 그림이다. 여기에 정조 시대 중인 천수경이 중심이 된 여항인들의 문학 모임 '송석원시사'도 이런 클럽 모임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인왕산 옥류동 계곡에 있는 천수경의 정원인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단체가 '송석원시사'다.
지금, 과거에는 집단지성의 힘으로 이루어냈던 일을 빅데이터들을 총합하여 결과물을 제한 없이 생성해내는 인공지능 AI가 대체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 해도 통섭의 힘과 창의성, 집단지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거 우리 선조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각 분야의 대가와 전문가들이 툭 터놓고 격의 없이 모여 소통하고 토론하는 아름다운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대중문화, 대중예술로 특화한 상업주의문화로서의 한류가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을 주도하는 고품격 신(新)한류문화를 만들어나가는 21세기형 '한림별곡'을 고대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