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인문학 명맥 오직 시민의 힘
어떤이는 자존감 회복 꿋꿋이 자활
찾아와 곁이 돼주는 사람 있다는것
돈·잠자리 없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
다정한 말동무 돼주는것 알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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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전남 순천시의 노숙인 재활시설(디딤빌)을 필두로 24년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에서 주최하는 전국 노숙인시설 인문강좌의 막이 올랐다. 올해의 강좌는 성남 '안나의집'과 광주 다시서기센터, 인천 '내일을여는집', 원주 '다시서는집' 등 7개 기관에서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다.

지난 8월30일, 순천 디딤빌에서 첫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전 순천시 공무원들과 만나 함께 시설로 향했다. 워낙에 외진 곳에 터를 잡은 시설이어서 초행자로선 찾아내기 힘든 곳이었다. 이후 외부에서 오는 강사들은 시설직원이 순천역으로 나가서 모셔 오기로 했다.

이번 강좌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선의에 선의가 더해졌다. 작년에는 전국 12개 시설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는 지원이 끊겨 강좌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모금 운동을 전개했는데 불과 한달만에 200명에 가까운 시민이 참여해 3천여만원을 모았다. 덕분에 7개 시설에서 강좌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다양한 분들이 모금에 참여했다. 책고집 회원의 참여가 많았고 그 외 다양한 분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지역의 기자와 지방의원, 작가, 주부, 직장인, 공무원,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울림이 큰 사연이 많지만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무려 1천만원을 보내준 분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사연인즉 "'가난할 권리'를 읽은 뒤 책고집 후원을 결심했고 마침 모금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책고집을 방문해서는 "좋은 책 써줘서 고맙다"는 말로 눙치려 했다. 돈이 많은 분인가 상상했는데 막상 대화해 보니 그런 분이 아니었다. "귀농해 농사지으며 살고 있을뿐이며 나눔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을뿐"이라며 겸손하게 말할뿐이었다.

또 하나의 감동 사연이 있다. 지역의 재활시설(디딤빌)에서 강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한 순천시 공무원들이 모금에 동참했다. 참여 인원이 무려 21명이다. 10여 년 전국의 지자체에서 강좌를 진행했지만 처음 겪는 일이다. 노숙인은 그저 지역 이미지를 훼손하는 존재로 여기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이렇듯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는 공무원들도 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모금에 참여한 순천시 공무원들 이름을 일일이 적어본다. 배진영, 손영주, 조경란, 문강희, 이영란, 김유정, 조선경, 신영숙, 조인혜, 서희선, 김지현, 장명희, 김재빈, 오수연, 이정배, 장진욱, 채숙희, 신은희, 양영심, 윤은경, 신춘우(무순, 직책 및 존칭 생략).

2024년 책고집 주최 노숙인 강좌의 주제는 '곁이 되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통해 삶을 변화시킨다는 구호는 지나치게 거창하고 얼핏 낡았다. 얼마나 대단한 강좌이기에 사람을 변화시키겠는가. 우리는 그저 소박하게 다가갈 뿐이다. 힘겨운 이웃들에게 다가가서 곁이 되어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진행하는 인문학이다.

2005년 시작된 노숙인 인문학이 어느덧 스무살을 맞았다. 작년에 책고집에서 최초로 전국화를 이루어냈지만 불과 1년만에 중단 위기에 놓였었다. 중단 위기의 노숙인 인문학을 살린 건 정부도, 기업도, 정치도 아니었다.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명맥을 잇게 됐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소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노숙인은 인문강좌에 참여한 이후 자존감을 회복하고, 꿋꿋하게 자활의 길을 걷는다. 반면 대부분은 여전히 거리의 삶을 벗어 나지 못한다. 인문학의 특성상 단기 목표나 분명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인하고자 할 뿐이다. 가난한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 찾아와 곁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노숙인은 돈이 없고 잠자리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없다. 노숙인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곁이 되는 인문학은 그들에게 다가가 당신에게도 찾아와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일이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