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어쩌다 문까지 닫게 됐나


레지던트 191명 중 152명 지원 '미달'
민형사상 책임 항시 노출 근무 꺼려
의대생, 전문의 가치 하락에 우려
구조적 해결 없이는 의료대란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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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9.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의료계에선 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한 인력난과 응급실 의사들이 떠안고 있는 사법리스크 등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응급실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응급의료대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응급의학과는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전기모집 지원결과'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모집정원 191명 중 152명이 지원, 지원율 79.6%를 기록했다. 지난해 85.2%의 지원율 대비 줄어든 수치며, 2년 연속 정원에 미달됐다. 의사로서의 사명감만으로는 더 이상 격무에 따른 보상이 어렵다는 통념이 의료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내 한 의과대학 의대생 A씨는 "과를 지원할 때 선배들의 의견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응급의학과는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된다 해도 응급실에서 나와 의원을 개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최근 응급실 사태만 봐도 앞으로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은 훨씬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에게 응급처치 도중 문제가 발생하거나, 응급처치 이후 배후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 응급실 의사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이 가해져 항시 사법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응급실 근무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응급실을 떠나 24시간 운영하는 365의원을 개원하거나, 요양병원 당직의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응급실 전문의들도 있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휴일 아주대병원 응급실 스케치 (19)
8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9.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도내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는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응급처치해도 배후진료를 할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전원할 병원을 찾는 일이 빈번하다"며 "최선을 다해도 문제가 생기면 소송을 피할 수 없고 이후 시술이나 수술이 늦어져도 응급실 의료진이 책임져야 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응급실 의사들은 환자가 실려오는 게 무서워지고 결국 응급실을 떠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넘어가려는 추세가 점차 강화돼 응급의학과와 같은 필수의료에 유입되는 의사의 절대적 수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공급을 늘리고 치열해진 시장 경쟁으로 기대소득을 낮춰 필수의료 종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의사 면허의 가치'보다 '전문의 자격증의 가치'를 더 빠르게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높다. 전공의 수련을 생략한 미용·통증 등의 병원 일반의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는 현 구조에서 향후 의대 증원으로 의사 수가 늘어날 경우 시장이 포화되기 이전에 선점하려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2020년도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한 총 대상자는 3천593명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2천990명으로 감소한 이후 2022년 2천991명, 지난해 2천885명에 이어 올해는 2천782명으로 나타나 실제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의대생들도 전문의 자격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의대생 C씨는 "정부에서 인턴 2년을 의무화하는 정책도 검토하는 것으로 아는데, 레지던트 4년까지 수련을 하면 총 6년의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며 "시간 투자 관점에서도 인턴만 하고 일반의를 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어서 전문의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전문의는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가 매겨지는데 기반이 무너지며 일반의로 가는 움직임이 많아졌다"며 "응급의학과 의사가 경험하는 사법리스크 등 악순환이 해결되고 이들의 전문성이 인정되면 응급의학과의 인력 수급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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