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 적폐청산 지나친 집착
오히려 검찰정권시대 막 열어줘
큰 강·작은 개울은 빗물로 이뤄져
나날이 힘겨운 서민들 섭대천 고사
작은 행복도 얻기 어려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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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있다. 저승의 문턱 망각의 강 '레테'(Lethe)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죽음의 신 하데스는 망자들이 건너야 할 다섯개의 강을 두었다. 고통의 강, 비탄과 통곡의 강, 불의 강, 두려움과 약속의 강, 망각의 강이다. 누구라도 이 강물을 마시면 생전의 모든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중국의 황하도 그렇다. 가수 김세레나가 부른 '성주풀이'는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고 시작한다. 뤄양(洛陽)에서 가까운 망산(邙山)의 북쪽이 북망산이다. 죽으면 가는 곳이다. 생전의 부귀영화도 간난신고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거다. 이곳에 묻힌 제왕과 제후가 줄잡아 200명이라고 한다. 지금도 북망산 아래는 황하가 굽이치는데, 중국문명의 요람이자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무대이다. 이따금 강이 범람하면서 북망산이 침식돼 지도가 바뀔 정도라고 한다. 산 아래 묻혔지만 졸지에 어복(魚腹)에 장사를 지낸 셈이 되는 것일까.

북망산에서 황하를 건너면 용문석굴이다. 동굴이 1천352개, 불감이 785개가 새겨져 있다. 생자(生者)에게는 오늘의 거울이요, 사자(死者)에게는 저승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듯하다. 여기에서 황하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며 흐른다. 강의 이편을 차안(此岸), 저편을 피안(彼岸)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인도인들이 어머니 강으로 부르는 갠지스에 장사를 지내는 것도 어쩌면 강의 원관념이 생명의 근원이면서 죽음을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생사일여(生死一如)인 것처럼. 그래서 강을 건너는 것을 종종 죽음을 불사한 결단으로 여긴다.

루비콘강을 건넌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했을 때,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는 선언이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갈 수 있지만 피안에서 차안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주역에도 섭대천(涉大川), 즉 '큰 내를 건넌다'는 말이 나온다. 대체로 건곤일척 모험을 상징한다. 예컨대 수(需)괘는 '확신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것은 밝은 빛이 길을 여는 것과 같아 그 끝이 길하다. 따라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涉大川)'고 한다. 반면 송(訟)괘는 '정치인은 신뢰와 청렴과 불편부당으로 처세하면 길하지만, 정치의 끝은 역시 흉(凶)하다. 소통과 조언이 필수적이며, 새 세상을 열려는 모험은 불리하다(不利涉大川)'고 한다.

쉽게 풀이하면 수(需)괘는 강태공이 빈 낚시로 세월을 낚는 것처럼 기다림의 미덕을 익히면 마침내 천시(天時)를 얻어 대업(大業)을 이룬다는 거다. 반면 송(訟)괘는 큰 정치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두려워하며,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기다림과 조급함이 대업을 이루느냐, 실패하느냐 여부를 가른다. 이처럼 앞으로의 행로가 이롭든 불리하든 그 경계에는 '큰 내를 건너는(涉大川)' 결단이 자리한다. 삶과 죽음을 품고 가르는 강(大川)은 본디 정치적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종종 '대천(大川)'을 건너는 상황에 처한다. 강의 중간에서 유불리는 따져보는 것은 이미 늦다.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이미 대천을 건너고도 배를 끌고가는 경우가 있다. 도강불고선(渡江不顧船),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리라 했는데 말이다. 예컨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정권이 앞선 정권에 집착한다면 도강고선(渡江顧船)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정권의 적폐청산은 성공적이었나. 이미 건넌 배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은 아닐까. 그 결과 오히려 검찰정권시대의 막을 열어준 것은 아닌가. 현 정권도 도돌이표에 갇히지 않으려면 여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지 않나.

큰 강이든 작은 개울이든 빗물로 이뤄진다. 주역에서 빗물은 인생에서 작은 성공이나 행복을 나타낸다. 한데 밀운불우(密雲不雨), 나날이 힘겨운 서민들은 섭대천은 고사하고 자그마한 성공이나 행복도 얻기가 쉽지 않는 요즘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