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 도미노 효과
"임상연구 병행 여력 없어" 1~8월 논문 올해 659편… 전년比 10% 감소
미래인재 없고 대학 존재 이유 사라져… "지금부터 정체 시작" 관측도
의정갈등 장기화 속 의과대학의 핵심인 '연구·교육·진료'의 삼각구도가 무너졌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인력난에 격무를 버티지 못한 전문의들이 하나 둘씩 대학병원을 떠났고, 남은 교수들마저 진료에 매진하느라 의대 본연의 역할인 연구와 교육에 할애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12일 대학의학회에 따르면 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JKMS에 올해 1~8월 투고된 논문은 총 659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33편에 비해 10%가량 감소했다. 매주 발간하는 JKMS는 지난해까지 매주 6~7편의 논문을 게재했지만, 지금은 매주 3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A씨는 "대학병원은 임상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고 학술적 성과를 낼 수 있어서 교수가 된다"며 "지금은 의료진이 부족해 환자 보기에도 정신이 없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자료를 모으기 힘들어 임상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학 연구의 정체 현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논문 하나를 작성하는 데 평균 6~12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의정갈등이 본격화된 2월 이후로는 논문 작성 환경이 열악해져 게재 편수도 감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의정갈등 후 논문 투고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조만간 전국적으로 논문 작성 자체가 마비될 가능성이 높고 국내 저자의 논문 투고 건수와 발행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어쩌면 매주 1편씩만 실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학병원 현장의 교수들은 대학의 존재 이유인 연구와 교육이 사라진 환경에 좌절하고 있다.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수업 거부로 미래 의료계를 이끌어갈 이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것도 뼈아픈 대목이라고 토로했다.
경기남부지역 의대병원의 한 교수는 "교수들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게 큰 보람인데 이들 모두 현장에 없지 않느냐"며 "전공의가 남았어도 당장 시급한 진료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의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진료만 볼 거라면 대학병원이 아닌 2차 병원에 가거나 임상교수로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교수들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교수들은 의대에서 연구·교육 기능이 무너지고 진료만 남으면 의학 발전이 정체될 것이라 경고한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 수련을 하지 못해 전문의 배출이 멈추고, 새로운 의학 연구를 못하는 건 국가적인 손해"라며 "정부가 밝힌 전문의 중심 병원과 의학교육 개선을 위한 5조원 투자안은 진료 가능 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에 불과해 의료계의 질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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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