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생활 공동체 의미 ‘피부양자’
국가서 인정한 동성 동반자 권리
“성소수자도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천에 사는 조서울(34)씨는 다가오는 12월 연인과 결혼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법적 성별이 모두 ‘여성’이어서 혼인신고할 순 없지만, 연인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동성 커플이 서로의 동반자로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인이 나의 피부양자가 되면 사회에서 우리 두 사람을 부양자·피부양자 관계로 인정하게 된다”며 “서로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이 적히지 못하는 우리가 서로의 동반자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공적 징표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지난 7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동반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며 함께 경제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정해 건강보험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법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가족, 친구 등이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는 등 ‘사실혼’ 관계인 커플도 상대방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
그러나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김용민(34)씨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된 소성욱(33)씨에 대해 김씨와 동성이라는 이유로 그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이에 소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동성 커플도 사실상 부부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이들을 사실혼 관계로 보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동반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동성 커플도 차별 없이 사회보장제도를 누려야 한다고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현행법상 동성 간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어 동성 커플들은 부부가 누릴 수 있는 상속세, 증여세를 면제받거나, 유족 연금 등을 받을 수 없다.
동성 연인과 교제하고 있는 임모(47)씨도 대법원의 판결을 반겼다. 그는 “거주지와 남자친구의 직장이 멀어 일주일 중 3~4일만 한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 주소지를 한 곳으로 합쳐 사실혼 관계를 입증할 수 있게 되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취득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소수자도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권리 보장이 확대되길 바라고 있다. 조씨는 “연인과 함께 살 집을 구하려고 하는데 1인가구로 분류돼 전세 대출 한도도 낮고, 1인 가구를 위한 면적이 좁은 임대주택만 신청할 수 있어 고민이 많다”며 “앞으로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법제화까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