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는 위험하다. 총알처럼 튀어 오르는 돌이나 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부상은 부지기수고, 독 오른 말벌과 뱀의 위협이 도사린다. 무거운 예초기를 짊어진 채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실족이나 탈진, 고립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전원주택 앞마당의 평화로운 잔디깎이와는 거리가 멀고, 군부대 진지공사의 노동강도에 가까운 고된 작업이다.
이렇다 보니 벌초의 책임을 놓고 집안 갈등이 벌어진다. 누구네만 왜 매번 빠지느냐부터 누구네는 몇 명이 왔는데 누구네는 한 명만 왔다느니, 누군 손 하나 까딱 안 했다느니, 누구네가 문중에서 벌초비용을 지원받고는 입을 닫았다느니 말들이 많아진다. 감당해야 할 봉분 수가 많을수록 갈등은 빈번하다. 상다리가 휘어지는 것에 비례하는 차례상 갈등과 다를 게 없다.
요즘 세대는 차례와 벌초의 취지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겪어본 적 없는 조상께 막연하게 예를 표하기보다는 나와 실질적으로 가까웠던 가족을 추모하고, 지금 나와 가까운 가족의 얼굴을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보는 계기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래서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과도한 책임감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고인이 생전 선호하던 음식으로 차례상 차림이 다양해지고 전문업체에 벌초작업을 의뢰하거나 봉안당으로 옮겨 모시는 등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늘고 있다.
자손끼리 싸우고 다치고 기진맥진해가며 자신에게 예를 차리길 원하는 조상은 없을 것이다. 자손끼리 화목하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언제가 됐든 무엇이 됐든 그렇게 잊지 않고 자신을 추억해준다면 행복해할 분들 아닌가. 홍동백서 안 했다고, 풀 좀 덜 깎았다고 노여워할 분들은 아니지 않은가.
/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