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커녕 형식적 사과도 안해
아리셀은 이주노동자 차별 일삼아
지금껏 배·보상 교섭요구 안 응해
납품받는 회사의 결단이 필요한때
지난 6월24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벌어진 지 오늘로 94일이 된다. 많은 노동자와 시민을 충격과 분노, 슬픔에 빠뜨린 이 참사에 대한 대다수의 인식은 '이제 마무리가 됐겠지'다. 하긴 시간도 오래 지났고 또 대표이사 박순관과 그 아들 등 몇몇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중 핵심은 여전히 박순관이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에게 진정성은 고사하고 형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참사의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정당한 배·보상에 대해 회피하며 오로지 아리셀과 한 몸인 에스코넥에까지 책임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속 상태에서도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에스코넥이라는 기업이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리셀과 에스코넥의 관계를 제대로 봐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가 풀린다.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는 단순한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를 넘어선다. 에스코넥은 아리셀 지분의 96%를 보유하고 있으며, 박순관이 두 회사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에스코넥은 아리셀 설립 당시 50억원을 투자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운영자금을 제공해왔다. 현재 차입금 규모가 155억원에 달한다는 점은 아리셀이 재정적으로 에스코넥에 완전히 종속돼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에스코넥은 아리셀이 생산한 일차전지를 자사의 '전지사업부문' 매출로 계상하고 있으며, '아리셀'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및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에스코넥이 아리셀을 단순한 자회사가 아닌 자사의 한 사업부문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에스코넥은 모(某) 회사를 통해 연간 2천500억~3천억원 정도의 실적을 올리는, 모(某) 회사의 1차 협력업체다. 아리셀은 문을 닫아도 에스코넥은 그 회사에 납품이 지속되는 한 문을 닫을 일이 없다. 아마도 박순관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정당한 배·보상이 없어도 에스코넥만 지키고 있으면 형을 살고 나와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려진 것처럼 아리셀은 공장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일삼았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은커녕 불법으로 구조를 변경해 비상구의 접근을 어렵게 했고,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출입 ID카드를 부여하고 불법 파견된 이주노동자에겐 ID카드는 고사하고 출입을 위한 지문 등록마저 시켜주지 않아 최초 폭발 이후 37초만 보장됐어도 희생자 모두 살 수 있었을 가능성을 차단했다.
아리셀은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기만적으로 한국의 법·제도에 어두운 희생자 가족에게 말도 안 되는 합의안을 제시하며 기만·우롱하는 것을 넘어 지금껏 배·보상을 위한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아무 자격이 없는 노무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변호사법 위반마저 저지르고 있다. 국방부 납품을 위해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시험성적표를 조작하고 불량품을 양품으로 속여 적재하다 폭발한 것이 이번 참사의 일차적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런 부도덕하고 염치없는 악덕 살인기업이라면 이를 납품받는 회사의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닌가. 글로벌 기업으로 전 세계 소비자를 향해 약속한 협력사 행동강령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이제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희생자 가족에 대한 정당한 배·보상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요구하고 강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지속적인 협력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언급한 모(某) 회사는 삼성이다.
/한상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 대변인·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정책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