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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 보이는 산천은 의구하기만 한데 지척의 고향은 세상 어디보다 멀기만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기슭에서 자맥질을 하면 금방이라도 유도(留島)를 지나 내 고향에 닿을 듯하고 마근포, 조강포에서 배를 띄우고 뱃소리 한가락 마칠쯤이면 마중해서 뛰어나오는 혈육들을 볼 수 있을 듯한데…'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한마음 비문> 중에서

김포시 월곶면 조강(祖江)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한데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한강 하류의 끝 물줄기다. 조선시대 조강 지역은 진상품과 물목을 실은 세곡선이 김포 주변 19개의 포구와 나루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100가구 넘게 북적이던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1953년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애기봉 전망대는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의 경계인 154고지에 1978년에 세워졌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와 기생 애기의 사랑과 이별 설화로 유명한 애기봉은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서부전선의 최일선으로 해병부대가 경계 근무 중이다. 적막해서 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건축물이 어우러져 2021년 10월 평화의 가치를 담은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23일 조강전망대에서 외국 기자들이 북녘땅을 바라봤다. 한국기자협회 초청으로 방한한 불가리아기자협회 대표단이다. 조강 너머 북한 개풍군 산과 논이 손에 닿을 듯하다. 불과 1.4㎞다. 일간지 '잼야'의 게오르기 게오기에브 편집부국장은 "불가리아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7년간 분단을 경험했기 때문에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을 꼭 취재하고 싶었다"면서 "코앞의 땅을 갈 수 없는 대치 상황과 실향의 아픔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스토얀 일코프 '24시' 국제부 기자는 "외신으로만 접했던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며 "정치·외교·사회 갈등으로 평화통일의 소망이 좌절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기봉 평화의 종은 한국전쟁 유적의 탄피와 최전방 성탄트리 철탑을 녹여 만들었다. 평화의 종에는 세계 각국 어린이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남북이 어린이처럼 순수하면 통일의 시계가 빨라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불가리아 기자들과 함께 종을 울렸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