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7공구 완충녹지 도시숲 개장
세가지 색 삼색이와 금빛 털 치즈
길냥이 두마리 떨어져 캣맘 기다려
알고보니 부부… 얼마전 치즈 출산
아내에 먹이 양보 '물안개' 구절 연상


삼색이
류시화 시인의 시비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길냥이 삼색이. /전진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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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얼마 전까지 인천 송도국제도시 7공구 내 '5호 완충녹지'라 불렸던 곳이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송도완충녹지 기후대응 도시숲'(이하 도시숲)이란 다소 긴 이름으로 바뀌었다. 완충녹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대기오염·소음·진동·악취,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공해와 각종 사고나 자연재해,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재해 등의 방지를 위하여 설치하는 녹지를 말한다.

종전의 5호 완충녹지는 수목 식재의 계획이 치밀하지 못하고 녹지 내 보행로도 흙 콘크리트 포장인 탓에 사용자 중심의 쾌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십 수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쇠꼬챙이처럼 연약해 보였던 나무들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 성장했다. 도시숲 조성 사업 결과 녹지 내 보행로는 맨발걷기용 흙길로 진화되었고 새로운 수종의 나무도 추가 식재되는 등 여러 면에서 주민 친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지난 5~7월 사이에 공사를 하여 8월 초순에 새로 개장한 도시숲은 공교롭게도 올여름 장기간에 걸친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로 인하여 상당수의 새로 식재한 나무들이 고사하고 기존의 벚나무들은 심각한 병충해 피해를 입었다. 성격상 녹지는 도시공원과 달리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일 여지가 많은데 그 폐해를 겪은 셈이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도시숲에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길냥이가 주인공이다. 한 마리는 몸에 세 가지 색의 털을 지녔다고 하여 삼색이라고 불리고 다른 한 마리는 온몸이 금빛 털이어서 치즈라고 불린다.

나와 집사람은 맨발걷기를 위해 도시숲을 즐겨 찾는데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종종 삼색이를 보곤 했다. 녀석은 밥때에 맞춰 먹을 것을 챙겨주는 캣맘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언젠가는 숲의 중간지점에 세워져 있는 류시화 시인의 시비(詩碑) 머리 위에 용맹스런 자태로 앉아서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치즈를 보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영역을 나눠 가진 길냥이로만 알았다.

오늘은 우연히 보행로 옆 나무 벤치 뒤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치즈를 보았다. 도시숲을 한 바퀴 돌아오니 매번 만나는 캣맘 가족 옆에서 치즈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 옆에 서성이고 있는 다른 한 마리의 길냥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삼색이 같았다.

오늘에서야 캣맘 가족을 통해 치즈와 삼색이가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치즈가 출산을 했는데 아직 새끼들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사실. 삼색이는 치즈와 같이 있을 땐 자기 먹이를 치즈가 독차지하는 것을 시샘하지 않고 양보한다고 했다. 삼색이의 처지가 안타까운 캣맘 가족은 치즈와 멀리 떨어진 곳에 먹이 그릇을 마련해 놓고 녀석을 유인한다고 했다.

불현듯 삼색이가 앉았던 시비의 '물안개' 앞 구절이 오버랩되었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 물안개처럼 / 영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