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주대병원 응급실 스케치 (15)
8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9.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기금을 비상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특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난관리기금은 지자체가 각종 재난에 대한 사전 예방과 적극적인 사후 대처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적립·운용하는 기금이다. 이 같은 공적 예산을 의료공백으로 인한 비상진료 의료기관 현장에 투입해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앞서 2020년 3월에도 정부는 지자체가 보유한 재난관리기금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에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에 특례조항을 넣어 코로나19 관련 피해 지원에도 기금을 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하다. 의정갈등 장기화로 의료진이 대거 이탈하고 응급실 뺑뺑이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의료현장은 그야말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여러 명의 몫을 떠안으며 한계에 다다른 남은 의료진을 위해, 또 무엇보다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응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다수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상황에 대비해 각 지자체마다 보험처럼 저장해 둔 가용 예산을 투입한다는 점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일선 지자체의 반응은 냉랭하다. 무더웠던 올 여름 폭염과 폭우 등의 재난을 겪으며 기금을 상당 부분 소진한 지자체의 경우 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화성시의 경우 지난 1월 유해화학물질 오염수 유출 사태에 이어 지난 6월 리튬공장 화재 참사까지 겪으며 이미 재난관리기금의 35% 정도를 소진했다. 지자체에서도 의료대란 사태에 공감은 하지만, 일회성 사용도 아닌 특례 방식을 통해 예산을 언제든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점,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서 시작된 현상을 결국 지자체에서 수습하도록 등떠미는 점 등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의료계의 반응은 더 차갑다. 재난관리기금까지 투입하면서 의정갈등을 장기전으로 끌고가겠다는 확고한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이번 정부 결정은 의정갈등을 더욱 장기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난관리기금은 임시방편이 될 순 있어도 의료대란의 본질인 전공의 이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속히 병원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국민들의 한숨이 더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