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녀들의 말에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틀린 주장'에는 반박할 태세로 파주 용주골로 갔다. 고작 잘난 척하려 왕복 180㎞ 거리를 계속 오간 건 아니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들이 '불쌍한' 사회적 약자임을 보여줄 만한 진술을 이끌어내 글로 남겨야 했다.
그녀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려던 건 대단한 정의감과는 거리가 멀다. 월급받는 이의 의무일 뿐이었다. 다만, 의문은 품고 있었다. 그간 '불쌍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는 언론에서 일하는 활자 노동자의 주요 취재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사의 흥행 공식은 다분히 신파적이다. 다수 대중의 관심은 '피해자다움'이 깃든 서사를 마주하고서 발화점에 달한다. 들끓는 분노는 그제야 부당함으로 튀어 연대로 승화한다. 정치권이 분주해지는 것도 이때쯤이다. 하지만 발화점이 높은 데 자리한 어느 사회적 약자의 인생, 가해자가 뚜렷하지 않은 누군가의 고통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으로 치부됐다.
현장에서 말문이 막힌 건 스스럼없는 그녀들의 답변을 듣고서다. 불쌍함은 비웃고, 부당함을 욕했다. 전형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들의 목소리는 기존 언론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실제 삶을 눈앞에 두고서 나는 감히 고담준론을 떠벌리지 못했다. 부끄러움은 활자 노동자의 몫이었다.
'나는, 우리는 성 노동자입니다'는 이렇게 쓰였다. 기획기사는 마무리됐지만, 사건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못했다. 그사이 복잡한 문제는 '어린이'와 '여성'의 파이 싸움으로 호도되기 시작했다. 강제 철거의 폭력성은 그 뒤에 숨었다. 3월5일 오전 9시30분, 파주 문화극장 앞에서는 용주골에 연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맞불 집회를 벌였다. 부당함이 여전하다. 활자 노동자의 일도, '성 노동자'의 일도, 노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