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흐름속 무심한듯 그 자리에
개혁·부활 정신 유유히 흘렀으면
가을 정취속에서 자연이치 깨닫고
우리의 삶과 역사의 성찰 이어가길
무더위 끝에 찾아온 시원한 바람에 문득 기독교의 '십자가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 기쁜 소식도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순간의 고통과 절망이 전제되고 있음을 상기해 본다. 마치 우리가 느끼는 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긴 여름의 찌는 더위의 고통을 전제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독자들에게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水鍾寺)의 종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종사는 불교의 양대 교파인 선종과 교종 중 교종의 본찰인 봉선사의 말사(末寺)로, 운길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절은 작지만, 절 마당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의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푸른 가을 하늘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수종사에는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 내려오는데,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혁명에 대한 스트레스로 피부병을 앓게 되었고, 이를 치료받기 위해 강원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그때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맑은 종소리처럼 들렸고, 그로 인해 이 절을 '수종사'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다.
또한, 수종사는 실학의 대가인 정약용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정약용의 고향이 바로 수종사 근처 두물머리이니, 어린 정약용이 틈이 날 때마다 수종사에 올라 두물머리와 하늘을 바라보며 조선의 개혁을 꿈꾸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그는 공자와 맹자의 껍데기에 매달리는 유학적 허상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경세와 목민의 사상을 추구했다. 이러한 그의 개혁 사상은 아마도 수종사에서 하늘과 북한강, 남한강이 모이는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다짐했을 것이다.
수종사는 조선 후기 위대한 예술가이자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와 조선 차(茶) 문화를 정립하고 발전시킨 초의선사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그리워했던 것 중 하나가 초의선사의 차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이곳은 중앙 권력에서 배척된 남인 세력과 서얼들이 모여 차와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 개혁을 논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비록 그들이 추구했던 개혁은 미완에 그쳤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조선은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변하지 않는 자연은 여전히 우리를 품어주고 있다.
역으로 수종사를 바라보면서 그린 아름다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도 그 기상이 잘 나타난다. 짙푸른 하늘과 강, 그리고 하얀 뭉게구름은 서로 눈부실 정도로 어우러지며, 마치 천상의 강과 하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모든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무릉도원, 자연스러운 평화의 안식이다.
이곳 수종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무심한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개혁의 정신과 부활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의 역사 속에도 유유히 흐르면 좋겠다. 내 나이가 들어 수종사에 오르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초의선사의 차를 마시며 가을의 수종사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을의 정취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안에서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 아름다운 수종사의 풍광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정화되고, 새로운 개혁의 정신 역시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