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중심 작품세계·인터뷰 등 모든 것 담아
■ 나의 작가주의┃정성일 지음. 마음산책 펴냄. 444쪽. 2만2천원
책에는 '왕빙, 영화가 여기에 있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왕빙은 중국 선양시의 스러져가는 공장단지 '테시취'를 담은 9시간11분짜리 다큐멘터리 '철서구'로 2003년 등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세자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령혼' 등 국가에 의해 정체성이 훼손당하고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있다.
왕빙 감독은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된 작품이 없어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공개하는 작품마다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받는 것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왕빙에 대한 저자의 사랑은 각별하다. 저자는 영화와 평론 쓰기에 권태를 느낄 무렵 '철서구'를 보게 되었고, 줄곧 왕빙을 향한 존경과 애정을 보내왔다. 20년 동안 눈앞에 도착하는 왕빙의 작품을 저항 없이 환대하며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쓴 글을 폐기하며 왕빙을 따라갔다.
'나의 작가주의'는 영화감독 왕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책으로도 그 의미가 깊다. 감독의 영화는 긴 상영시간으로 유명한데, 그중에는 16시간30분에 달하는 작품도 있다. 편집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에 작품의 의도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저자는 왕빙의 영화를 볼 때 상연되는 무대가 '중국'이라는 점과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책은 이러한 왕빙의 영화 아홉 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왕빙 감독에 대해, 또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철저하게 써 내려간다. 왕빙의 생애부터 영화평론, 부산에서 직접 나눈 인터뷰와 필모그래피까지 저자는 공력을 기울여 감독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그러면서 왕빙에게는 '지금, 여기' 있음에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싸우듯 담아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왕빙의 영화에 동참할 것을, 눈을 돌리지 말고 계속해서 질문할 것을 촉구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