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현장] 영국 극작가 게리 오웬 대표작 '킬롤로지'
자식 잃은 아버지 알란 복수 결심
3명 배우 1인극처럼 독백형식 진행
콘텐츠와 범죄 연관성 메시지 던져
"어쩌면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게 다가 아니다." ('킬롤로지' 대사 중)
매일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변화하는 세상 안에 살고 있다. 발전하는 기술과 더욱 넓어진 온라인 미디어 공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틈을 더욱 깊이 파고든다. 2024년에 만난 연극 '킬롤로지'는 초연을 했던 5년 전보다 그 메시지가 더욱 명확하게 느껴진다. '폭력'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이 어느덧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음을 증명하듯이.
영국의 극작가 게리 오웬의 대표작 '킬롤로지'는 극 속에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 이름이다. 게임은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인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되고, 소년 '데이비'는 게임과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다. 그런 데이비의 아버지 '알란'은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고자 복수를 결심하고, 게임 개발자 '폴'은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이를 향해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극은 3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르지만 마치 1인극처럼 독백에 의지해 진행된다. 무대는 여러 낙서와 기억과 기록으로 채워진 어둡고 축축한 느낌으로, 각각의 인물을 제약하는 닫힌 공간이자 무엇이든 그려볼 수 있는 무한의 공간으로 비춰졌다. 알란이 교집합처럼 폴과 데이비를 만나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 극은 오로지 그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각자만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그럼에도 묘한 연결고리들이 눈에 띈다. 아이가 자라는 환경, 부모와의 관계, 인격의 형성 과정 등.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전달력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마치 눈앞에 그려지듯 묘사되는 장면과 차곡히 쌓아가는 서사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를 바탕으로 설득력을 지닌다.
다만 극 속 알란과 데이비의 관계는 불친절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또 가족과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는 데이비였기에 그런 아들을 향한 부정(父情)이 갑작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복수를 결심하는 일련의 감정과 행동은 결국 그가 한 아이의 아버지였음을 떠올리며 수긍하게 됐다.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 폭력적 상황, 그 이면에는 보통의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냈음직한 따듯한 모습이 담겨 있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이와 함께 극은 폭력적 콘텐츠와 비극적 범죄의 연관성, 개개인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과 그것이 가지는 책임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알란 역의 김수현 배우는 "초연과 재연 때보다 지금 시대에 작품이 더 어울리는 부분은 저희가 맞췄다기보다 세상이 맞춰졌기 때문인 것 같다"며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을까 고민하며 연습했고, 전보다 관객들을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진하게 전해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관객들과의 소통을 극의 묘미로 꼽은 만큼 이 부분에 집중해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폴 역의 김경남 배우는 "각 인물이 다수의 관객과 호흡하는 것이 매력이다. 작업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도 관객과의 스킨십이었다"고 밝혔고, 데이비 역의 안지환 배우 역시 "대본이지만 가까이에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에게 있었던 일을 관객들에게 잘 들려줘야겠다는 것에 초점을 뒀다"고 전했다.
연극 '킬롤로지'는 12월 1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