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등장한 분이 '부모님'
철 들면서 사랑·헌신 깨닫게 돼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곤해
존경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기억을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존경하는 사람을 적으라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을 적으라는 조사는 왜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었지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을 적으라고 하면, 옆집에 사는 예쁜 여자아이나 짝사랑하는 반 친구를 적어 넣을까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존경한다는 것은 인격이나 생각, 행동 등을 높이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로부터 여러 차례 외면받고 심지어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남들이 탐내는 벼슬이나 명성 따위에 연연하지 않으셨지요. 장군이 계시지 않았다면 조선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여러 가지 기구를 발명하셨지요. 게다가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지배층에 국한되어 있던 지식이 백성들에게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근간이 세종대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요.
김구 선생 역시 나라를 지키고 되찾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선생이 만들고 지키신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뿌리임을 헌법 전문에서도 확인하고 있지요. 그렇게 고대하시던 해방된 나라에서 민족의 분열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다가 같은 민족의 흉탄에 유명을 달리하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역시 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는 분들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역사적 위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회사나 조직에 갓 들어갔을 때 부장님이나 상무님, 전무님, 사장님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경의 대상이지요. 약간의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요.
이에 비해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 좋다는 것이지요. 존경과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존경한다는 말 속에 들어있는 고상함과는 달리 좋아한다는 말에는 친밀감이 숨어 있지요. 나와 가깝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꼽는 조사는 대부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인이 존경하는 사람 순위에 처음으로 등장한 분이 계십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부모님'입니다. 저도 누군가로부터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듣게 되면 언젠가부터 '부모님'이라고 답하곤 했는데요. 철이 들면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을 깨닫게 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권위주의 시대에서 인본주의 시대로 변화한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이지요. 혹은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은 '나는 누군가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일 텐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존경이라고 하면 어쩐지 나와는 다른 세계에 계시는 분들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인간계가 아닌 천상계에 계신 분들이라고나 할까요. 저로서는 친밀감보다는 거리감이 좀 더 크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존경받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