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심심(甚深)한 사과' 파문으로 MZ세대의 문해력이 개탄의 대상이 됐다. '심심'의 한자 뜻을 몰라 무미건조하거나 싱겁다는 순우리말 '심심하다'로 새겨, 최상급 사죄인 '심심한 사과'를 조롱으로 오해한 해프닝이었다. 동음이의 한자어의 의미를 구별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상의 촌극들은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그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에겐 심각한 문제인 모양이다. 족보는 족발보쌈세트, 이부자리는 별자리, 두발 자유화의 '두발'은 '두 다리'. 지난 7일 발표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인식 조사에 참여한 초·중·고 교사 5천800여명 중 5천명 이상이 서술한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 사례들이다. 금일(오늘)을 금요일로, '사건의 시발점'을 욕으로, 중식(점심)을 중국음식으로 착각하고 오해한 학생들도 있었단다.
부실한 한자교육 때문에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향 자체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사들의 개별적 체험을 전체 학생의 문제로 단정하기엔 일반화의 오류가 걱정된다. 족보를 모르는 학생도 두발과 풍력은 알 수 있다. 심심(甚深)은 MZ세대뿐 아니라 저학력 고령층에게도 어렵다. 한자교육을 받은 50, 60세대에게도 연패(連패)와 연패(連敗), 구축(構築)과 구축(驅逐)의 구분은 어렵고 헷갈린다. 읽고, 쓰고, 말하는 학교 수업 자체가 문해력을 높이는 과정이다.
정작 문제는 문해력이 완벽한 지도층, 특히 정치권의 언어구사 행태다. 대화와 타협이 생명인 정치에서 문해력은 정치인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소양이다. 그런 사람들이 악에 받친 언어를 쏟아낸다. 대통령을 '왕초 밀정', 영부인을 '살인자'라 한 야당 사람들이 있다. 이를 받아치는 여당 사람들은 야당 대표를 향해 '연쇄살인자'와 '살모사'를 언급한다. 검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인을 달리하는 권력의 주구들이고, 언론은 기레기 집단으로 추락했다. 말로 인해 우리 사회에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증오에 가득 찬 정치인들의 언어는 문해력을 발휘해 이해할 가치가 없다. 초·중·고생들이 그들의 언어를 따라하면 사회와 국가의 미래도 어둠에 빠진다. 백성들의 소통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증오의 언어로 갈라진 후손들을 마주하면 어떤 심경일지 가늠할 수 없다. 모국어를 타락시키는 정치로 인해 한글날의 의미가 점점 참담해진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