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학습 지속 어려운 '고려인 한국어 교실'
안산고려인문화센터 수업 못 들어
어른들은 일터에… 아동청소년뿐
저임·파견 비중 높아 참여 어려워
1학기 성인반 수료자 절반도 안돼
"10월9일은 무슨 날일까요?"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오후 4시30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위치한 안산시고려인문화센터의 한 교실에서는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교실 안을 채운 건 고려인 초등학생 12명과 선생님. 한글날이 무엇을 기념하는지 아느냐는 선생님 질문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교실 맨 앞줄의 예화(10)양은 3년 전 고려인 부모와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대학에 가고 싶다"며 "컴퓨터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과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나 구 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와 직계 후손을 일컫는다. 스탈린 시대엔 소수민족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우리말을 잃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한때 구 소련 거주 경력만을 이유로 한국 입국이 금지됐던 이들은 이후 재외동포법 개정에 따라 지난 2007년부터 입국길이 열렸다.
조부모의 나라가 궁금해 한국으로 왔다는 최엘레나씨는 한국어를 직접 가르치고 싶다는 꿈이 생겨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학습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한국어는 한국을 이해하고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수단이기 때문에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고려인 최다 거주지로 꼽히는 안산에는 고려인 2만3천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한국어에 서툴지만, 한국어 교육 수요는 높다.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은 센터 내 14개 반이 모두 가득 찰 정도다.
하지만 성인반 수업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성인은 많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한 저임금·파견직 근로자 비중이 높아 수업에 꾸준히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고려인 매크 세르게이(37)씨는 "한국어 수업을 듣고 싶어도 쉬는 날이 토요일 뿐이고 주로 야간에 출근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동료들도 대부분 한국어가 서툴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센터의 올해 1학기 성인반 수업 신청자는 200명에 달했지만 수료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최씨는 "성인을 포함한 고려인들은 대다수 한국어 열정이 크지만,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불안정한 근무 여건이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이들이 일과 한국어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명숙 센터 사무국장은 "고려인이 한국어 학습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크다"며 "근로 여건부터 개선돼야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했다.
/김준석기자·마주영·김태강수습기자 joons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