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의 섬세한 필체로 쓰인 장편소설


■ 대온실 수리 보고서┃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420쪽. 1만8천원

대온실 수리 보고서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이지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닐 테니까. … 하지만 질서에는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김금희의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 30대 여성 '영두'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나가는 장편 역사소설이다.

일제강점기 대온실을 만들었던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회고록, 대온실이 만들어졌던 당시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당사자 마리코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모든 역사를 톺아가는 영두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

인천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생 때 서울 원서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그런 영두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창경궁'이라는 단어를 듣자 멈칫하게 된다. 어린 시절 창경궁 인근 원서동의 '낙원하숙'이란 곳에서 하숙하며 겪었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낙원하숙의 주인 할머니 '안문자'는 해방 이후 남한에 남은 잔류 일본인이었다. 고국인 일본에서도, 이주한 한국에서도 외면받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문자의 손녀 '리사'까지 셋이 함께 생활했던 일은 창경궁 대온실 수리 과정과 맞물리며 되살아나고, 영두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온실 보수공사 중 비밀을 간직한 어느 흔적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는다. 영두는 이 흔적이 문자와 연관됐음을 직감하고, 온실 보수공사와 이곳에 얽힌 일들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한다. 문자가 간직한 오랜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된 영두는 비로소 자신의 아픔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에 얽힌 우여곡절은 한국 근현대사 생존자들의 숭고한 삶과도 연결된다. 소설은 '수리 보고서'를 써내려가는 과정이 곧 아픈 역사에서 기인한 누군가의 마음 속 생채기를 들여다보고 '수리'해가는 행위임을 은유한다.

짧은 호흡의 소설들이 서점 매대를 휩쓴 상황에서 간만에 만난 반가운 대작이다. 김금희 특유의 섬세한 필체도 빛을 발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