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시험 거쳐 국가유산청이 ‘공인’

풍년가만 부르던 딸 보며 김영임 찾아가

장거리 운전해준 엄마 차안에서 꿈 키워

“가야할 길 멀고 멀지만, 그래도 걸을 터”

양은별 씨는 직접 작사·작곡한 ‘사랑히 눈이 온다’ 음원을 조만간 공개한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감성을 담아낸 이 곡을 기점으로 국악 대중화를 위한 은별 씨의 행보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양은별 씨는 직접 작사·작곡한 ‘사랑히 눈이 온다’ 음원을 조만간 공개한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감성을 담아낸 이 곡을 기점으로 국악 대중화를 위한 은별 씨의 행보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촉망받는 국악소녀에서 국내 경서도(경기서울지방) 소리의 대표 국악인으로 거듭난 양은별(25) 씨가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가 됐다. 16년간 김영임 명창을 사사한 그는 지난달 실기평가와 면접평가로 구성된 국가유산청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며 또 한 번 큰 성장을 이뤄냈다.

최근 김포문화원에서 만난 은별 씨는 “다음 단계인 전승교육사(옛 전수교육조교)와 보유자까지는 멀고 먼 길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길로 가려 한다”고 의연하게 소감을 밝혔다.

무대에 오르면 좌중을 압도하는 은별 씨도 이번 이수자시험은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어진 곡의 장단도 칠 줄 알아야 하고, 유래나 역사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며 “이수자시험이 매년 열리는 게 아니어서 긴장이 많이 됐던 것 같다”고 시험 당시를 떠올렸다.

또래들이 유행가를 흥얼거릴 때 국악 카세트테이프를 반복해서 듣고 ‘풍년가’만 따라 부르는 어린 딸을 보며 가족들은 김영임 명창에게 편지를 보내고 찾아갔다. 은별 씨가 김포 고창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일 때다.

김 명창을 처음 본 날, 스스로 표현을 빌리자면 ‘어디서 나온 지 모를 패기’로 그는 ‘울산 아가씨’를 불렀다. 그날의 패기는 은별 씨가 꿈에 다가서는 디딤돌이 됐다.

은별 씨는 “10살 때 우연히 들었던 풍년가는 내게 꿈을 만들어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장거리 운전하는 어머니의 차 안에서 그 꿈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국립 국악고에서 기량을 쌓은 은별 씨는 한양대 음대의 유일한 경서도 소리 전공 입시에서 30대1의 경쟁을 뚫고 진학했다. 2021년에는 한양대 음대 대학원에서 경서도 소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박사과정 2기를 마치는 등 학업에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 그는 생애 첫 앨범 ‘시작의 갈피’를 발매했다. ‘마음을 노래하는 소리꾼’이라는 찬사가 따랐다. 그 무렵부터 KBS ‘열린음악회’ 등 지상파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하며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은별 씨는 오는 12월 새로운 음원 ‘사랑히 눈이 온다’를 공개한다. 노랫말은 시각적 묘사와 감정의 묘사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은별 씨는 “눈이 어떤 이에겐 추운 이미지, 어떤 이에겐 보기 좋은 존재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눈을 보며 ‘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포근한 솜이불처럼 덮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나에게 눈은 입김조차 투명한 겨울의 느낌과 하얀 설렘이었다”고 했다.

엄마 김정옥 여사는 은별 씨에게 가족이자 매니저이자 친구다. 둘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공연 얘기며 TV드라마 얘기, 개인적인 고민 등을 주고받는다.

은별 씨는 “이미 엄마 덕분에 나는 잘 컸다고, 엄마 덕분에 바르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도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내 옆에 건강하게 있어줬으면 좋겠다”며 동석한 김 여사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