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강의 작품세계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
지옥같은 참상 전한 '소년이 온다'
제주 4·3 조명 '작별하지 않는다'
치유되지 못한 아픔 오롯이 담겨
너무도 쉽게 망각해버리는 누군가의 아픔, 현대사에 생채기를 남긴 참사, 그리고 여전히 그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의 우울. 지난 1993년 시인으로 데뷔한 이래 한강(53)이 부단히 좇아온 실존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강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조리는 무엇이었을까.
2024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으며 덩달아 그의 작품이 조명받는 지금, '한강 문학'의 정수라 불릴만한 대표작과 작가로서 그의 일생을 톺으며 그 의미를 되짚어봤다.
■ 혼의 등장… 너무 아파서 죽지 못한다 작품세계
작품마다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문장 곳곳을 지탱하는 심지는 동일하다. 한강의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의식은 '인간의 고통'이다. 특히 몇몇 작품에서는 이런 고통을 한으로 체화한 '망자의 혼'이 화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결코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앞서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이 보여준 한 사진첩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사진첩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시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런 한강의 작품에 대해 김태선 문학평론가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강의 작품은 우리에게 은폐되고 그동안 고통에 짓눌렸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게 한다"며 "그러면서 억압된 존재, 타자를 향한 관심을 모색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지난 10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한강을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은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평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 흔적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각각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제주 4·3 사건을 그리며,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은폐되고 고통에 짓눌렸던 목소리"를 우리의 눈앞에 형상화한 한강의 소설을 읽다 보면,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무심코 잊어버렸던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전이된다.
[대표작1 '소년이 온다']
■ 소년이 온다(2014)┃한강 지음. 창비 펴냄. 284쪽. 1만5천원
16살, 중학교 3학년이던 '정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살당한다. 그를 조준한 두 눈은 한국 군인, 그를 쏘라고 명한 사람은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였다. 망령이 된 화자는 이승을 떠돌며 썩어 문드러져 가는 자신의 시신을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 '동호'마저 전남도청 앞에서 살해당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앞서 총에 맞아 쓰러진 정대를 두고서 홀로 도망쳤던 동호는 일말의 죄책감을 안고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는다. 그는 불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 옆마다 겸허하게 촛불을 밝힌다.
얼마 뒤 자신마저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미래를 모르는 그는 "용서하지 않을 거다. …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라며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치열하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분명 따로 있는데도.
살아남은 생존자에게도 그날의 참상은 여전히 생생한 지옥과 같다. 한강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망자와 생존자 등 총 7명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 고통이 7명의 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며 우리의 뇌리에 광주의 5월을 강하게 아로새긴다.
[대표작2 '작별하지 않는다']
■ 작별하지 않는다(2021)┃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332쪽. 1만4천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을 썼던 소설가 '경하'는 새하얀 눈이 내리는 꿈을 꾼다.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오는 눈 아래로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심겨 있다. 마치 묘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찰나, 바닥으로 물이 차오른다. 누군가의 묘가 순식간에 바다에 휩쓸리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몸부림치지만 경하는 어쩌지 못한다. 그러고서 꿈은 끝난다.
꿈은 마치 경하에게 닥칠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제주도에 살던 경하의 친구 '인선'이 서울의 어느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경하는 인선이 기르는 새 '아마'를 돌보러 제주도에 간다. 그곳에서 경하는 분명 서울에 있어야 할 인선과 조우하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한다. 인선이 들려준 이야기는 1980년 5월의 광주보다 한참 전,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런 제주 4·3에는 인선의 아픈 가족사가 서려 있었다.
제주도 땅을 덮어가는 눈 아래서, 경하는 죽어서 혼령이 된 듯한 인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 4·3의 처참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 체감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전해지는 그때의 고통은 치유되지 못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 4·3과 결단코 작별할 수 없는 이유이자, 작별하지 않겠다는 한강의 결연한 외침이 행간 곳곳에 담겼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