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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120차례의 시상이 이루어지는 동안 노벨문학상은 '남의 잔치'였다. 부러움과 자조 속에서 손님처럼 '남의 잔치'를 지켜보았던 한국문학이 마침내 당당히 세계문학의 주역으로 호명됐다.

한강의 수상은 온전히 한강 개인의 작가적 역량의 결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문학 작가들과 독자의 오랜 비원과 이인직의 '혈의 누'(1906)를 기준으로 118년간 쌓아온 근대문학의 역사, 세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장된 대한민국의 국력 그리고 무엇보다 우수한 번역이 한데 어우러진 성과이기도 하다.

번역은 언어와 문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예술의 범주를 넘어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언어가 다른 문명이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창이자 근대화의 동력이었다. 동아시아 등 비서구 지역에서는 낙후한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변혁하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의 역사를 살펴봐도 번역은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다. 1968년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은 '설국'을 번역한 번역자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국'은 일본 내에서도 그렇게 주목받는 작품이 아니었으나 사이덴스티커의 빼어난 번역으로 지역문학에서 일약 세계문학으로 발돋움했던 것이다. 2006년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은 추리서사 기법으로 투르크의 문화와 예술을 잘 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파묵은 영어에 능통한 작가라 창작 단계부터 영어 번역을 의식하고 번역에 용이하도록 이 작품을 썼다는 후문이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은 1889년 미국에서 출판된 구비문학작품집 '한국민담집(Korean Tales)'이었고, 김옥균 암살범 홍종우가 파리 유학시절인 1892년 프랑스 소설가 로니(J. H. Rosny)와 공동으로 번역한 '춘향전'이 바로 그 뒤를 잇는다. "주인은 먼저 온 손님이요, 손님은 나중에 올 주인"이라는 해체철학자 데리다의 말을 맥락을 바꿔 인용하면, 세계문학의 손님으로 남을지 주인이 될지의 여부가 번역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문학의 세계적 확장을 위해 번역에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