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형 인간 길들여져 사회 배출
출세·성공 지향 맹목적 교육가치
공부머리·일머리 따로 작동 이유
엘리트들, 삶의 철학 먼저 정립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처럼 이들은 대한민국 교육이 낳은 '공부머리'가 탁월한 엘리트들이다. 대개는 예비고사 출신인 60대 이상과 학력고사 출신인 50대 이상으로 고교 재학 당시엔 뛰어난 학력(學力)을 소유한 '공부의 달인'이었다. 그들 중에는 대학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각종 국가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들이 그들에게 거는 기대만큼 '일머리'에는 적잖은 부실함과 심지어 도덕성, 인성조차 미덥지 못한 것이다. 특히 그들은 집단 토의·토론에 약하고 상명하복식 명령체계와 권위의식에 매우 강하다.
이는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이 대체로 민주적인 토의·토론에 한없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바로 구시대 교육의 특징인 주입식 암기 교육과 일방적인 교사중심의 전달식 수업에 따른 각자도생의 경쟁교육에 길들여진 결과다. 한때 널리 알려진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소개된 최우등 졸업생들의 비결은 바로 교수의 설명을 토씨 하나 흘리지 않고 또한 숨소리까지 받아 적겠다는 각오로 강의 내용을 필기한 후 완벽하게 외워 시험때 그대로 쓰는 것이었다.
좀 더 부연해 말하자면 그들은 필기할 때 요약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은 최대한 배제하고 교수가 한 말만 쓴다. 거의 강의 대본을 만드는 수준이다. 이처럼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게 한국 최고 엘리트들의 공부 비법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체주의 식 문화에 따른 영향으로 21세기 문화혁명을 주도하는 디지털 첨단 과학기술 문화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상상력, 독창적인 자기 생각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는 이른바 충직한 로봇형 인간으로 길들여져 사회에 배출되었다.
이것이 아직도 우리 교육이 양산하고 있는 엘리트들의 실상이라면 얼마나 동의할 것인가? 하지만 우리의 고교시절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주어진 시간 내에 빠르게 기계적인 문제풀이 기술을 습득한 학생만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최악의 평가 시스템이다. 매년 수능에서 고득점을 거둔 졸업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고교 시절에 받은 교육은 "문제풀이 기술을 배워 익숙하게 풀어낸 것밖에 없다"고 고백함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니 우리의 엘리트들은 '공부머리'와 '일머리'가 따로따로 작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런 결과의 배경은 결국 출세와 성공 지향의 맹목적인 교육가치가 우리 교육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가치는 이제 '배워서 남을 지배하고 잘 살자'는 가치로 바뀐 듯싶다. 예컨대 특정대학 출신들이 국가의 주요 요직에 대거 포진해 있지만 그들의 '일머리'가 '공부머리'에 못 미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 이름을 널리 드높일 것인가' 즉 입신양명이 우선이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국가와 세계를 이롭게 하려는 생각은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장관, 고위직에 오르고자 하는 엘리트는 가문의 출세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보다 먼저 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고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며 사회와 공동체에 얼마나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삶의 철학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육은 엘리트들이 이 세계를 위해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가도록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광활한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를 위한 우리 교육의 책임과 의무라 믿는다.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