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경기지역 학교 도서관에서 성교육 관련 도서 2천500여 권이 폐기된 것을 두고 재점화된 논란(10월14일자 2면 보도=소설 ‘채식주의자’ 폐기 논란… 경기도교육청 ‘진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도내 교사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사실상 경기도교육청의 ‘도서 검열’에 따른 결과라며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교조 경기지부, 다산인권센터 등은 17일 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교육청이 성평등·성교육 도서와 관련한 문제를 주장하는 보수성향 단체의 보도를 그대로 담아 학교에 공문을 보낸 것은 엄연한 검열행위”라며 “나아가 ‘폐기’와 ‘열람제한’의 처리방식까지 학교에 제시한 것을 보면 ‘각급 학교에 전달만 했다’는 도교육청의 주장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자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도교육청은 지난해 9~11월 관내 교육지원청을 통해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이 담긴 공문을 학교에 전달했다. 문제는 보수단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 등의 주장으로 언급한 성교육 도서들이 담긴 언론보도를 공문에 첨부한 것이다. 일부 학교는 유해 도서를 추리는 과정에서 해당 보도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지난 2월 도교육청은 그 결과를 알기 위해 최근 1년간의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도내 학교에서 수집해 총 2천517권이 폐기된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강의 수상 이후 도교육청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폐기) 목록을 정한 것”이라는 해명을 부랴부랴 내놨으나, 학교 현장의 반발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수원의 한 초등학교 사서교사는 “20년 동안 근무하며 이런 형식의 공문을 받은 건 처음인데 ‘자율’로 포장했을 뿐, 폐기 결과까지 보고하라는 건 압박이자 검열일 따름”이라며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이 외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민주적인 과정 속에 책을 고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대책을 교육청이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오는 22일 예정된 국회 교육위원회의 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도 ‘성교육 도서 폐기’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교육위 소속 복수의 의원들은 도교육청의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