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한강 책만… 다른 책 안 나가
인쇄업계 젊은층 기피 3D업종 전락
일거리 줄고 공실 늘어 공포감 만연
'작별…' 주문 폭주에도 큰 감흥 없어
필자는 최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찍은 H인쇄소의 담당자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물론 노벨상 소식이 들려오기 전의 일이다. 그 담당자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가 좋은 시절이었고 지금은 인쇄업계가 3D업종(2교대 12시간씩)이라 워라밸을 외치는 젊은이들은 '야간근무'라는 말만 들어도 아예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그 인쇄소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 44세! 내년과 내후년이 되면 인쇄기를 돌리는 기장(책임자)들이 정년(61세)을 하는데 후임자가 없어 퇴직자들을 계약직으로 계속 고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필자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책을 찍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눈이 침침하고 행동도 굼뜨고, 몸도 여기저기 아픈 퇴직자들이 계속 현장에 있는 건 인쇄사고가 날 위험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후속세대가 끊어지는 것이니 이보다 아득한 일이 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신간을 보면 확실히 예전보다 오류가 빈번하다. 책이 선에 맞지 않게 접혀있거나 안에 칼자국이 나 있기도 하고, 페이지마다 재단이 안 돼 붙어있는 면도 나타난다. 본문에서 인쇄가 안 된 페이지가 나오기도 하고, 잉크 점이 떨어져 있기도 하다. 이 인쇄소를 거래해도, 저 인쇄소를 거래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만큼 인쇄소가 취약해졌다는 반증이어서 일일이 지적하면서 인쇄소에 물어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예전에는 연말부터 다음 해 5월까지가 성수기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점점 그 기간이 단축돼 설 쇠고 2월이면 벌써 비수기에 접어들어요. 디지털 소량인쇄가 발달해서 일감이 줄어들었고요. 또 신학기 교재도 2월 마감인데 인구가 줄어들어 전년도 11월이면 마감이 돼요. 다이어리나 캘린더도 예전보다 안 찍죠. 우리가 거래하는 출판사는 신간을 2천부, 1천500부 정도 찍어요. 그러면 재판을 찍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어요. 파주출판단지에는 큰 인쇄소가 많은데 일거리가 너무 없다고 해요. 인쇄소들이 대개 리스(임대)로 인쇄기를 샀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기계를 팔려고 내놓아요. 우리도 일거리가 많이 줄었어요. 앞으로는 더욱 그럴 거예요. 이미 인쇄소들이 공실이 많아요. 앞날이 안 보이고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우리 업계에 만연해있어요."
그렇게 말하던 담당자에게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전화를 걸었다. "노벨상 발표가 나고 30분 후 '작별하지 않는다' 10만부 주문이 들어왔어요. 2, 3일 내에 납품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난리가 났어요. 아휴! 우리가 그걸 순식간에 어떻게 다 찍어요? 하청을 줘야지…."
이 인쇄소가 최근 가장 많이 찍은 부수는 4만부. 그것도 1년에 한 차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감이 줄면서 인쇄기도 줄였기 때문에 소설을 찍는 흑백 기계는 30년 된 낡은 것 달랑 1대. 그러니 폭주하는 물량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3일에 한 번씩 2만부, 3만부씩 찍고 있어요. 직원들이 싫다고 비명을 질러요. 요즘 누가 주말에 나와서 일하고 싶겠어요? 그렇다고 보너스를 주는 것도 없어요. 직원들은 그저 그래요. 노벨상을 받아도 출판사 역시 큰 데만 살아남는 거죠."
몇몇 출판사와 몇몇 인쇄소, 몇몇 서점만이 재미를 보고 말 것인가!
/김예옥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