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 이주·정주 이야기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에 따라
종교나 신념·장애·연령·성적지향
따른 차별 금지하는 규칙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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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바다를 넘어온 나무'(최진아 작·연출, 10월18~2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이주와 정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심인물인 은하의 삶터와 일터가 무대이다.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삶이 펼쳐지는 작품이다. 삶터에서는 이주노동자 파샤와 은하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파샤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말이 유창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은하는 첫 만남에서 "제 말 알아들어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마도 이때부터 둘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파샤는 6개월 동안 임금을 못 받고 있다. 현재 미등록 상태이다. 일터에서는 고려인 리나와 은하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리나는 러시아어 번역일을 하고 있다. 리나는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의 후손이다. 한 달을 넘게 기차에 실려 가면서도 볍씨를 고이 챙겨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2도나 확장한 고려인의 후손답게 리나는 사과 씨앗을 심는다. 재외동포(F-4)비자를 갖고 있다.

연극 '바다를 넘어온 나무'는 우리가 이 지구에 도착할 때 처음 내린 그곳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여겨지는 제도의 문제를 저변에 깔고 있다. 처음 내린 곳에서 정주하지 않고 이주하게 되면 이주하는 곳이 그 어디든 그 꼬리표가 따라붙는 규칙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한 제도와 규칙은 한 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누구는 포함하고 누구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그 권리를 다르게 부여하고 제한한다. 우연한 도착이 운명처럼 차별하도록 작동하는 셈이다.

유럽의 차별금지법 비교 분석(국가인권위원회, 2022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2000년 차별금지를 위한 EU 법률을 채택하면서 인종평등지침(출신 인종 또는 민족에 관계없는 평등대우원칙을 이행하는 유럽연합이사회 지침)과 고용평등지침(고용 및 직무에서의 평등대우를 위한 일반 체계를 수립하는 유럽연합이사회 지침)을 마련했다. 그 중 인종평등지침 전문 6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유럽연합은 별도의 인종이 존재한다고 결정하려는 이론을 거부한다. 본 지침에서 '출신 인종'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고 해서 그러한 이론을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얼마나 섬세한가. 차별금지법에 '인종' 또는 '출신 인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인류가 '인종'에 따라 구분된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것이다. 스웨덴의 차별금지법은 '민족성'을 '출신 국가 또는 민족, 피부색 또는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정의하고, 핀란드의 차별금지법에서는 '출신'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출신 민족, 출신 국가, 사회적 출신 인종, 피부색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벨기에 법은 '추정되는 인종'이라고 언급하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법 조항에서 '인종' 개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또는 추정되는' 출신 인종 또는 민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EU 안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갖는 다양한 입장이 있으나 중요한 점은 차별금지법을 법률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이 역설적으로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이주민, 무슬림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 국가, 종교 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에 따라 인종과 민족성만이 아니라 4대 보호 사유인 종교 또는 신념, 장애, 연령,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연극 '바다를 넘어온 나무'는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이 작동하는 일상의 삶을 그리고 있다. "저 사람 낯선 사람이잖아." "우리와 다르잖아요." "어떻게 같겠어. 같을 수가 없지." "생태교란종." 다르다에서 출발해서 악마화로 귀결되는 이 회로부터 끊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서길 원한다면 말이다. 지금의 규칙을 넘어서려는 입법적 힘이 더 커야만 가능한 일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