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101000182300018801

미국 도서관협회(ALA)는 해마다 금서 지정 요청 통계를 공개한다. 2022년 금서 지정 요청 도서가 총 1천269건으로 전년(729건) 대비 두배 가까이 늘었고,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이 금서 요청 3위에 올랐다. 근친강간 장면을 책의 주제와 분리한 '의도적 무지'의 결과다.

LGBTQ(성소수자)와 흑인차별을 다룬 책들을 겨냥한 보수진영의 금서 투쟁은 격렬하다. 시위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 주, 카운티의 공화당은 자기들의 금서 목록을 학교와 도서관에 강제하는 입법을 밀어붙이고, 진보 진영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반대한다. 그런 진보도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흑인차별 작품으로 낙인찍었다. 진영 사이의 PC(정치적 올바름) 전쟁에 고전과 명작들이 피를 흘린다.

토니 모리슨에 이어 비백인 여성 두번 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채식주의자' 금서 논란이 기로에 섰다. 무대는 경기도교육청이다. 지난해 국내 일부 보수단체들이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 폐기'를 주장하며 교육청과 학교를 압박하자, 도교육청이 학교에 공문을 발송했다. 진보 진영은 금서 지정을 주도한 공문이라 비판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교육청이 난감해졌다. '채식주의자'가 폐기해야 할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 목록에 들어가 2권이 실제로 폐기됐다. 도교육청은 '현황파악용 공문'이며 '도서 폐기 결정권은 학교의 몫'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벨문학상의 권위와 한강 열풍 앞에 초라하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올 4~6월에 걸쳐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 68권 전체를 '문제 없다'고 결정했다. 공문 자체가 무색해졌다.

보수단체 일각의 '성교육 도서 폐기 집회'나 '한강 노벨상 규탄 집회'는 진영의 문학적 결핍과 역사적 자격지심의 반증 같아 안타깝다. 토니 모리슨의 말에 정답이 있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내일 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가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시끄러울 테다. 도교육청을 향한 야당 의원들의 고성과 질타가 문학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의 영역으로 번질까 걱정이다. 정치적 의도 탐문에 집착하다간, 일각의 무지와 맹목을 진영간 PC전쟁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한강과 한강의 작품은 특정 진영이 전유하거나 배척할 대상이 아니다. 국정감사의 수준을 주목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