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거슬러 만난 초평도
화석정으로 향하니 율곡의 詩와
임진왜란때 불태운 선조가 떠올라
이이는 자운서원도 함께 오갔으며
나라 걱정에 많은 제안도 해


화석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진강 변 벼랑 위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정자를 감싸고 있다. 고려 말 야은 길재의 흔적도 600여 년 된 느티나무 풍경 속에 있다. 야은 길재가 살던 곳에 율곡 이이 5대조 이명신이 물려받아 세운 정자가 화석정이다. 화석정 따라 걸으면 율곡 이이의 '팔세부시'(八歲賦詩)를 만난다. '정자에 가을이 드니 생각은 끝이 없고,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며, 서리 맞은 단풍은 해처럼 붉구나'. 이이가 여덟 살에 지은 시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하튼 감동이다.

화석정(花石亭) 돌고 돌아 산기슭 내려올 때 저 멀리 초평도를 힐끗 본다. 이 강을 건너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도성을 버리고, 궁궐을 버린 후 빗속 화석정에 앉아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선조는 이이의 상소문을 이제야 되새김해 본다. 때는 늦었다. 임진왜란의 시작일뿐이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 건너 개성으로 야밤에 행차한다. 강 건너야 살 수 있다. 빗속 칠흑 같은 어둠에 화석정 불태워 임진강을 건넌다. 율곡은 정계 은퇴 후 고향에 내려와 후학들과 함께 앞으로 일어날 위기를 준비했었다.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지만, 파주 율곡에서 자란 후 아홉 번 장원급제하여 도성 안으로 입성하였다. 율곡(栗谷) 호도 고향이자 선산이 있는 밤나무골에서 따왔다. 선조 대에 동호 독서당에서 사가독서 하며 문답 형식으로 올린 글이 있었다. 34세 이이가 쓴 '동호문답'(東湖問答)은 왕도정치의 이상을 문답 형식으로 쓴 글이다. 과연 선조는 이 글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동호문답에 응했다면 비 오는 화석정에서 근심에 찬 얼굴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역사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이는 선조 대에 덕수 이씨 집안 사람인 이순신도 만나고자 한다. 직급이 높은 이이와 자리를 피하려는 이순신, 율곡은 나라 걱정과 함께 두보 시 읽기를 이순신 장군에게 권한다. 율곡 마음이 충무공에게 동했다. 국가 위기를 예측한 이이는 파주 율곡으로 내려온다. 임진강 따라 화석정과 자운서원을 오가며 나라 걱정에 많은 제안도 하였다. 당을 초월해 능력 있는 사람으로 기용하자고 주장하였다. 동인과 서인에 군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인도 있다고 했다. 그는 신분을 가리지 말고, 폭넓게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다.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쳐 피로가 누적된 후 파주 율곡에서 요양하였다. 하지만 차도가 없이 49세 나이에 죽는다. 그가 남긴 자산은 서재에 가득한 책과 부싯돌 그리고 후학뿐이었다. 묘와 사당이 파주 자운산 기슭에 있다. 노란 국화꽃 핀 가을에 가족과 함께 자운서원을 꼭 걸어보자.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