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성 문학동인 '소주한병'
20周 테마소설집 예상외 잘나가 '당황'
매달 합평… 먼저 7명에 한잔씩 따라
굴포문학회 만남후 30년 삶 나눈 인연
"무얼 더 바래" 건배사는 항상 똑같아
소주 한 병을 우리가 흔히 쓰는 소주잔에 따르면 딱 7잔이 나온다고 한다. 인천의 여성 소설가 7명이 2004년 결성한 문학 동인 '소주한병'은 매달 합평(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것)을 시작하기 전 각자 소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마신다. 그달 작품을 낸 작가가 먼저 마신다.
그렇게 20년을 쓰디쓴, 때론 다디단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면서 각자의 맛과 향기를 지닌 작품을 써내는 소설가로 성장했다. 여행도 함께 다니며 각자의 영감을 얻는다. 그러니까 이들의 이야기는 성장담이면서 우정담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8일 오후 인천 남동구 간석동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에 모인 '소주한병'의 작가 김진초, 이목연, 신미송, 양진채, 구자인혜, 정이수, 이선우. 마침 합평이 있는 이날 작가들의 화제는 동인 결성 20주년 기념으로 최근 자비로 출간한 테마소설집 '곳 것거 산 노코'였다.
소소하게 20주년을 기념하고자 소량 출판한 소설집이 교보문고 'MD의 선택'에 선정되면서 예상치 않게 주문량이 늘었다고 한다.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술을 소재로 우리에게 가까울 듯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 7편을 담아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날 '소주한병' 일곱 작가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한목소리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지은 이름('소주한병')이지만, 소설 쓰기를 위한 합평은 칼같이 날카롭게 지적해요. 교정도 하고요. 합평 때 소설을 내는 작가는 6명의 고급 독자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동의하는 평도, 동의할 수 없는 평도 있고요. 20년이 흐르니 다들 맷집이 좋습니다. (웃음) 소설을 내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하니 마감 시간을 지켜 글을 쓰게 되는 동력도 됩니다."
거의 모두 1994년 시작된 인천 여성 문인 단체 '굴포문학회'에서 만나 실제론 30년 인연이다. '소주한병'을 결성할 땐 멤버 절반 이상이 등단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차례차례 모두가 등단의 문턱을 넘었다.
"소설이라는 중심이 있기 때문에 20년을 버티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이 닿는 곳은 인간의 깊숙한 곳이죠.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들도 있지만, '남들이 왜 그럴까'하는 인간에 대한 고뇌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소설은 각자 쓰는 것이지만, 서로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다독거렸어요."
평균 연령은 60대 중반 정도다. 30대에 '굴포문학회'에서 만나 40대에 '소주한병'으로 모였다. 글이 익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은 이들은 문학뿐 아니라 이미 삶의 동반자가 됐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한 말이 주목받았는데, '소주한병'을 보노라면 다시 생각해볼 말인 것 같다. '소주한병' 작가들도 "한강이 아직 우리의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나이 같기도 하다"는 반응이다.
10년만 더 쓰자는 게 이들의 목표다. 지난 10주년 때도 그랬다고 한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쓰면서도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또 가다 보면 30주년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소주한병'의 건배사는 늘 똑같다. "무얼 더 바래!"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