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뱅크시의 '오류난 에리얼'
독일 뮌헨 MUCA 미술관 컬렉션 선보여
스운 '얼음 여왕'·카우스 '컴패니언' 등 72점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신당 내년 2월2일까지
벽, 건물, 도로 등 현대 도시의 공공장소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 '어반아트'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상이 됐다. 독일 뮌헨의 Museum of Urban & Contemporary Art(MUCA) 미술관은 유럽에서 가장 큰 어반아트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 중 하나이다.
이러한 MUCA가 거리에서 시작해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어반아트의 대표 작가 10명의 작품 72점을 한국에서 선보인다. 'ICONS OF URBAN ART - 어반아트: 거리에서 미술관으로' 전은 뱅크시·카우스·제이알·셰퍼드 페어리·리처드 햄블턴 등의 작가들이 뿜어내는 독특한 개성과 메시지의 파격미가 느껴지는 전시로 작품 하나하나가 역동적인 예술적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뱅크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뱅크시는 2005년 런던 소호의 한 골목에 곡괭이로 옆구리가 찍혀 부서진 채 마치 피가 흐르는 듯한 모습을 한 작품 '훼손된 전화박스'를 놓아뒀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자취를 감추는 전화박스처럼 영국 사회를 대표하던 빨간 전화박스도 현대 통신 서비스가 발달하며 쇠퇴했다. 사회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 또는 기물 파손 행위 사이에 많은 화제를 낳았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MUCA가 세계 최초로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왜곡돼 깨진 동영상이나 컴퓨터 화면, 물에 비친 순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에리얼'은 허물어져 가는 마법의 성을 배경으로 한 디즈멀랜드의 혼탁한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다. 뱅크시가 58명의 예술가와 협업해 만든 테마파크 디즈멀랜드는 현대사회를 풍자하며 소비주의와 상업주의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여러 메시지를 던졌는데, 가상의 공간을 뒤흔든 이 작품 역시 한국에서 처음 공개됐다.
동시대 스트리트 아티스트와 그래픽 디자이너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셰퍼트 페어리의 전시실은 라이트 박스처럼 구현돼 작품의 질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작품 속에는 밥말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지미핸드릭스 등 유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LP들을 새로운 레이어로 삼아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었던 그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스운은 그라피티 분야에서 선입견을 깨고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판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거리에 인물화를 직접 도배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그의 작품 '얼음 여왕'은 야외 스트리트아트와 비슷한 느낌의 매체를 사용해 강인한 표정을 한 여성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단단한 아우라를 형성한다.
미국의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카우스는 눈 위치에 X표가 그려진 '컴패니언'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1990년대 그라피티 활동을 통해서였는데, 기존의 광고 위에 자신의 디자인을 더해 공공장소를 되찾고자 하는 일종의 시위를 펼쳤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우스의 대표 캐릭터 '4피트 컴패니언'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MUCA의 관장 크리스티안 우츠가 전시를 소개하며 거듭 했던 말이 있다. 요즘은 무엇이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만 하면 1분 만에도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가 어반아트에는 호시절이었다. 작가들이 도시 곳곳에 자신의 작품들을 그려놓으면 누군가가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새롭게 그려지는 거리의 풍경 속에 녹아 전달되는 작가들의 여러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는 그것을 사람들이 찾아내고 그 의미를 인식하는 그 몇 시간의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지도 모른다. 도심 곳곳이 거리의 구석구석이 모두 캔버스가 되는 어반아트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전시는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신당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