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덕분에 전 세대가 모처럼 책과 독서에 푹 빠졌다. '텍스트 힙(Text Hip) 현상'이다. 2030세대는 종이책 완독을 인증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린다. 중장년층은 문학소년·소녀 시절로 돌아가 서점을 찾는다. 허무한 영상의 파도타기에서 탈출해 평소 책을 멀리하던 사람마저 종이책을 소비하고 즐기는 '근사한 신드롬'이다.
'텍스트 힙'의 원조는 한국의 열성 학부모라 할 수 있다. 1994년 대입 논술고사가 부활한 뒤부터 자녀들을 논술학원에 보내고 서점에서 입시생 필독 도서를 사다 날랐다. 문해력이 수능 등급과 대학을 결정한다는 입시 전략 때문이었다.
AI디지털교과서(AIDT) 도입을 앞두고 문해력과 학력 격차 우려 등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교육부는 AIDT를 내년 초등 3·4학년, 중·고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과목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기존의 종이교과서를 디지털에 옮기는 것을 넘어서, 학생별 학습 수준을 고려해 AIDT가 필요한 교재를 제공한단다. AI튜터링 기술로 학생들의 맞춤 교육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학부모들은 심란하다. 가뜩이나 폰을 쥐고 사는데 교과서까지 태블릿으로 바뀌면 자녀들의 디지털기기 의존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다. 문해력 형성 시기인 초등학생들의 종이 교과서를 없애는 게 맞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신의 자녀가 디지털교과서 첫 적용 세대인 점 자체가 불안한 표정이다. 유럽의 교육 선진국들의 사례가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긴다. 디지털 교육을 적극 권장했던 스웨덴은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학습을 중단했고, 핀란드는 종이교과서로 다시 돌아왔다. 충분한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
지난 5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2025 AIDT 도입 유보 청원'이 게시 30일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9곳이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신중' 의견을 밝혔다. 디지털교과서가 교육부의 의지와 현장의 반발 사이에 갇힌 형국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책과 서점, 독서가 '텍스트 힙'으로 한류 열풍에 겨우 진입한 시점에 디지털교과서 논쟁이 뜨거우니 미묘하다. AI시대가 활짝 열렸다지만, AI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도 커졌다. 교과서로 학생들을 지도한 AI가 학교와 교실을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학부모들의 반발은 인간을 대체하는 AI를 향한 공포일 수 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