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잘한다는 것은 곧 밀당을 잘하는 것”

우위의 정보 가지고 있어야 유리한 위치

착공신고 한 뒤 출장·휴가 등 결재 미뤄져

정부기관 담당자 사정 맞추려면 애 타기도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

살다 보면 ‘밀당’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밀당의 사전적 의미는 ‘밀고 당기기’의 약어로 보통은 연인 간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작전을 의미한다. 이게 말만 쉽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칫 지나치게 밀거나 당기면 오히려 상대를 쫓아내는 악수(惡手)가 되므로 매 순간 강약을 조절하며 치밀하게 상대의 빈틈을 노려 자신의 마음을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을 크게 보면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밀당에서 이기는 방법 역시 한 발만 물러서서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에 비해 덜 좋아하면 이긴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냉정하기보다 급해지거나 설렐 수밖에 없다. 그러면 밀당에서 한 수 접어주는 꼴이다. 반대로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면 밀당에서 밀리고 상대의 의도대로 끌려가기 쉽다.

그러나 아무렴 어떨까? 밀당은 사랑의 촉매제로 조미료 같은 요소일 뿐이다. 밀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밀당 없는 사랑은 김빠진 맥주 같아 싱겁겠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서라면 부수적일 뿐이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사업에서만큼 밀당이 필요한 곳이 없다. 연인 간의 밀당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감정의 소모에서 끝날 뿐이지만 사업에서 밀당을 소홀히 하면 손익이 크게 엇갈릴 수 있다. 자재를 살 때, 계약할 때,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거나 매도할 때, 인허가 받을 때,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밀당이 필연적이다. 사업을 잘한다고 말하는 것은 밀당을 잘하는 것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업에서 밀당을 잘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식견이 넓고 남들보다 우위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대부분의 경우 갑인 국가를 상대로 밀당할 때는 을인 기업의 입장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면 건축허가를 받고 나서 착공신고를 한 뒤 공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건축주는 하루가 급하게 서두르지만 허가권자인 정부기관에서는 윗사람을 의식하거나 출장, 휴가, 업무과다, 연휴 등 공적이거나 업무 담당자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결재가 늦추어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건축주가 꼼꼼히 서류를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의 입장에서 그들 주관대로 추가로 서류를 보완하라고 하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애가 탄다. 서류를 보완하면 다시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비용도 늘어난다.

국세청의 경우는 일상적인 세법과 달리 우선 고지서부터 보내고 나서 무언가 밀당을 유도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 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세금 고지서가 날아들면 적잖이 당혹스럽다. 이렇게 되면 역시 밀당이 일어난다. 세무 공무원들과 적법성 여부를 따지고 심하면 소송까지 일어난다. 밀당의 과정에서 세무사나 변호사가 속칭 ‘전관’이란 명분으로 끼어들기도 한다. 담당자가 부당하게 보일 경우 그 담당자보다 윗사람에게 따지기도 한다. 자칫 윗사람들과의 로비가 일어나게 되면 이는 밀당을 넘어 자칫 비리나 부패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에서 갑인 세무기관의 입장과 을인 기업의 입장은 동떨어지게 다르다. 밀당을 시작한 갑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덜 하므로 밀당 상대의 타는 속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을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갑인 세무기관이 보낸 고지서조차 사랑인 줄 알아 물불 가릴 여유가 없다. 갑의 주도하에 긴 신경전에 빠져들어야 하고 시간적 감정적 실질적 비용을 물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밀당은 나와 상대만 알고 있을 뿐 제3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은 벙어리 냉가슴 앓을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세금이 초과 징수되어도, 법에 맞지 않아도, 허가가 안되어도 밀당 상대인 기업만 시달린다. 이런 관행은 기업들이 지레 탈법을 떠올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법에 따른 민원처리에 왜 시장을 알아야 하고 청장을 알아야 하나? 우리가 후손에게 절대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랑 없는 갑과 을의 밀당으로 인한 뒷거래이다. 관공서 앞에 즐비한 전관이 나라를 좀먹는 사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민초들은 배고파 아우성친다. 감사원은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떡 놔라 할 시간에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보라!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